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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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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입력
2012.12.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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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그림책 작가는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요즘은 학습만화서들이 득세하는 터라 기운이 많이 빠졌는데 상이 큰 격려가 됐습니다."

수상작 (책읽는곰 발행)의 백희나(41) 작가는 등으로 이미 유명한 작가다. 여타 그림책과 확연이 구별되는 독창적인 그의 작업은 책을 낼 때마다 매번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림책 분야에 워낙 관심이 적은 터라 상과는 인연이 멀었다. 2005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것이 가장 최근의 영예. "직접 책을 보고 싶어서 작업을 할 뿐, 큰 기대나 사심이 없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도 거의 없는 편이고. 전 제가 만든 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웃음)"

백씨의 말대로 점토인형을 만들어 사진으로 찍은 삽화로 이루어진 그림책에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스토리텔링은 물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유머가 있다.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캐릭터애니메이션학과에서 수학하며 연출과 영화를 공부한 게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은 스토리텔링이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에 대한 생각과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계가 많은 종이책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시각적으로 가장 효과적인지 전략이 생겼어요."

은 덕지가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선녀 할머니를 만나 즐겁게 놀고 요구르트를 대접하고 왔다가 감기에 걸렸는데, 선녀 할머니의 영험한 힘으로 하루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지점토와 비슷한 성질이나 물에 망가지지 않는 스컬피를 이용해 인형을 만들고 옛 모습을 간직한 목욕탕을 섭외해 촬영했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와 오래된 목욕탕의 모습이 정답다. "어렸을 때 떼쓰지 않고 때를 잘 밀고 나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사주셨어요. 산신령이 살 것 같은 목욕탕을 찾느라 출판사 편집팀이 고생 좀 했죠. 출판사 남자 직원이 인형이 물에 뜨는 구도를 맞추기 위해 바비인형을 들고 남탕에 들어가기도 했고요.(웃음)"

"몇 년 전 써놓은 글로, 원래 얘기는 산신령이 나왔는데 여탕으로 무대가 바뀌면서 선녀님이 됐어요." 책은 상황에 맞는 스토리보드를 정확하게 만든 후 그에 따른 각각의 표정과 몸짓을 가진 인형을 제작해 3일간 목욕탕 두군데를 돌며 영화 촬영하듯 찍어냈다. "혼자서는 못했을 작업이에요. 요구르트가 '요구릉'이 된 것도 편집자의 결정적인 조언 덕분이었죠."

작가는 실사 배경으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판타지를 그리는 작업에서 특출나다. "현실과 판타지의 괴리를 잘 찍으면 그럴듯하게 나오지 않겠느냐 생각했죠. 꿈인지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럴듯한 판타지요." 기괴한 듯 하면서 정감 있는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배석한 우지영 책읽는곰 편집장은 그림책으로는 드물게 2만부 이상이 나갔다며 "낯선 할머니와 아이의 따뜻한 유대를 애들이 읽어내더라"고 말했다. "책을 만들 때 제 최종 기준은 '책값을 해야 한다'에요. 돈 주고 사서 볼 만한,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죠. 뭔가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그저 보고 즐거워할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 심사평장인정신·유머감각·유희정신 반짝반짝김서정 아동문학평론가ㆍ중앙대 강의교수본심에 올라온 어린이 청소년 부문 책을 검토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반응은, 그림책에 대한 경탄이었다. '한국 그림책 전체에 상을 주고 싶다'는 열렬한 호응과 함께 , , 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 , 시리즈 등도 논픽션으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좋은 책이었지만 논의의 초점이 흔연한 즐거움, 자유로운 상상력 발휘, 철학적 사고로의 인도 같은 덕목에 맞추어진 결과였다. 어린이 책 분야가 전체적으로 급속히 위축되면서 그나마 학습에 도움이 되는 논픽션 책들 외의 작가적 창작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가운데 이런 뛰어난 그림책들이 나와 준 데 대한 경의도 표해졌다.

이 별 이견 없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이유는, 점토로 빚어낸 인물과 사물 들이 보여주는 장인정신, 그로테스크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머감각, 환상과 현실·유년과 노년이라는 대립 항을 능청스럽게 결합시키면서 신나는 놀이를 이끌어내는 유희정신 등에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울퉁불퉁한 여자들의 벗은 몸을 거침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몸에 대한 편견, 금기, 왜곡된 시선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패기다. 전작(前作)들에서 상큼한 자유혼을 펼쳐보였던 이 작가의 또 다른 성취를 반기면서 격려를 보내고 싶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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