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비명문 출신, 출발부터 2류인생
기회조차 얻지 못한 20대를 보내고 30대 들어서 죽기살기로 훈련
남들 하향곡선 그릴 때 야구에 눈 떠… 2007년 36세에 데뷔 첫 3할타 활짝
"최선도 안되면 차선이라도 준비해야"
베테랑 필요한 LG서 다시 기회 잡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43세. 스타플레이어도, 비교적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투수도 아니다. 몇 년 전 40대 기수론이 고개를 들 땐 감독을 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여전히 그는 방망이를 잡고 있다.
1994년 데뷔해 내년이면 프로 20년째를 맞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노송'최동수(41)는 내년 역대 프로야구 최고령 타자로 그라운드에 선다. 양준혁(전 삼성)과 이종범(전 KIA)이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었던 때보다 한 살이 더 많다. 프로 원년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던 MBC 청룡의 백인천이 1984년 은퇴할 때와 같은 나이다.
최동수의 야구 인생은 '2류'였다. 비명문인 광영고와 중앙대를 거치면서 그 역시 '그저 그런'선수로 시간을 보냈다. 포수 출신인 그는 94년 2차 4순위로 LG에 입단했지만 당시 김동수(넥센 코치)와 김정민(LG 코치)이라는 쟁쟁한 벽이 버티고 있었다.
"야구 재능도 없었는데 프로의 높은 벽에 부딪히니 존재감은 더 없어졌고, 덜컥 겁이 났죠."한 시즌도 버텨내기 버거운 현실에서 내년이면 20번째 시즌을 맞는 그의 소회는 남다르다. "기회를 얻지 못했던 20대는 그렇게 흘러갔지만 남들이 하향 곡선을 그릴 무렵인 30대부터 야구에 눈을 떴다고 해야 하나요.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엔 최선이 되자. 최선도 안 된다면 차선이라도 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그 때부터 그는 엄청난 양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거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당당한 체구의 소유자가 됐다. "골든글러브를 탈 수 있는 선수도 아니고, 2,000안타를 칠 수는 없지만 살아 남기 위해서 먹고 자는 시간 외엔 운동만 했습니다."
잊혀질 뻔한 최동수에게 채찍질을 가한 건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었다. "2001년 김성근 감독님께서 LG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하셨을 때 많은 조언을 얻었고, 피나는 훈련을 통해 야구를 알게 됐죠."이듬해 포스트시즌에서 그는 MVP급 활약을 펼쳤고, 웬만한 선수는 은퇴를 고려하기 시작할 시점인 36세(2007년)에 데뷔 후 첫 3할(0.306)을 쳤다.
2010시즌 도중 4대3 트레이드에 묶여 SK로 트레이드됐던 그에게 지난해 친정팀 LG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더 이상 쓸모 없는 선수"라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2년 간의 '인천 유학'은 40대의 최동수를 최고령 타자로 만들어낸 밑거름이 됐다. "김성근 감독님과 SK에서 다시 만난 건 잠시 나태해졌던 내 자신이 초심을 다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SK로 이적했을 때 엄청난 훈련량에 개인 훈련은 잠시 중단했었는데, 그 때 감독님께서 부르시더니 '최동수답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력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왔던 제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더군요."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최동수는 매년 마지막 시즌이라는 각오로 그라운드에 서고 있다. 삼성에서도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가 50대까지 선수 생활을 한 원동력과 같다. "LG에서 김기태 감독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 고참선수들을 믿고 기회를 주신 감독님 덕분에 내년 시즌 최고령 타자로 뛸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LG의 고졸 심재윤은 1994년생으로 최동수가 LG에 입단할 때 태어났다. 최동수는 재능이 없어도 노력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먼저 다가가야죠. 그 친구들이 훗날 저보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최동수 프로필
생년월일=1971년 9월11일
신체조건=186㎝ 98㎏
출신교=봉천초-강남중-광영고-중앙대
프로 입단=1994년 2차 지명 4순위 LG
가족관계=아내 김보경(35)씨, 아들 태혁(1)
통산 성적=1,291경기, 타율 2할6푼8리, 90홈런, 502타점, 894안타
있도록요.”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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