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예상과 달리 높은 투표율과 큰 표 차이를 보이며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유례없는 보수와 진보의 총력전이자 세대 간 대결로 치달으며 48%의 결집된 반대파를 낳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당선자의 첫 반응도 민생과 대통합이었다. 여야의 선거공약도 표현만 다를 뿐 민생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통합에 집중되어 있었다. 누구를 지지했건 국민들은 이제 정치 지도자들이 협력하여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공약을 잘 실천해주기 바랄 것이다.
새 집권세력은 우선 인수위원회 구성에 전념하겠지만 이와 동시에 대통합을 위한 국민적 타협기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민생과 대통합을 위해 새누리당은 복지의 확충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경제 민주화에 관한 많은 공약들을 선보였다. 이를 실천하려면 당선자의 의지만이 아니라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어떤 것들은 국민적 동의도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두 후보 모두 당선되는 즉시 정파를 초월하는 국민적 합의기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가지도자회의'를, 민주통합당은 '국민경제회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타협기구를 구성하는 더 간명한 방법은 헌법기구이기도 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기구는 이미 가동 중에 있고 대통령자문기구이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의 협조를 받아야겠지만, 예산과 지원조직이 이미 모두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성과 기능만 바꾸면 된다.
대타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런 방식이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여야를 대표하는 인사들과 노사를 비롯한 주요 경제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여하여 우리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국가적 과제에 대하여 사회적 타협을 성사시키는 방안이다. 물론 현실진단과 타협의 초안 작성을 위하여 전문가 중심의 기초위원회 구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도 야당 추천 인사는 물론이고 이념을 초월하여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해야 할 것이다. 기초위원회의는 여야 공약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새 정부가 우선 추진해야 할 전략과제들을 추려 공청회와 간담회 등을 통하여 의견수렴을 거친 후 합의 초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국민경제회의를 열어 이 초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보고하여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국민적 합의 절차를 가름하면 좋을 것이다. 이 합의는 인수위원회 보고와는 달리 정파와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국민적 합의를 거친 국가전략보고서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이런 국민적 합의를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가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아닐까? 그는 독특한 정치적 위상과 역할로 새누리당의 총선과 대선의 승리에 기여했다. 안철수와 같은 대중적 인기는 없었지만 김종인 역시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안철수가 민주당의 친노 이미지를 희석시켰듯이 김종인도 과거 한나라당의 낡은 보수 이미지를 탈색시켰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의 이슈였던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 문제를 한국사회 최대 현안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새누리당이 오히려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처럼 보이게 했던 장본인도 바로 그다.
그는 묘하게 선거 전면에 나섰으면서도 항상 여야의 중간지대 어디에 서 있는 것처럼 처신했다. 때로는 박근혜 후보도 서슴없이 비판했다. 김종인은 이런 면에서 새 집권세력의 귀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그는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도 야당뿐 아니라 진보 개혁진영의 신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과 타협의 첫 걸음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구나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 고용창출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 타협의 모든 이슈에 대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그만큼 전문성을 뽐낼 인물도 흔치 않다.
김종인으로 하여금 당면한 진보적 개혁과제에 대한 보수적 타협안을 만들도록 하면 52대 48의 팽팽한 대치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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