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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21일] 정치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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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21일] 정치의 기하학

입력
2012.12.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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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이 끝났고, 보수 집권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실은 이는 권력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야 정권 재창출이지만 새누리 당 재집권은 전 정권과 단절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박근혜 당선자가 입버릇처럼 이번 선거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시대 교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위악한 농담처럼 들리긴 했지만, 일말의 진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는 그 결과를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이번에도 역시 보수세력이 대표하는 집단이 자신을 온전히 대표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패한 보수세력이 어떻게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정치적 대표의 논리라는 것이 품고 있는 역설을 헤아려보아야만 한다. 민주주의 정치의 으뜸 원리는 대표의 원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일러 대의민주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온전한 대표가 이뤄지는 일은 드물 뿐 아니라 외려 심하게 말하면 예외적인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찌 말하자면, 투표란 언제나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반하는 행위에 가깝다. 이를 한국정치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이해에 반하여 투표하는 이들을 두고 미스테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투표란 자신의 이해를 대표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대표하지 않기 혹은 비(非) 대표를 위해 마련된 정치적 공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투표 민주주의의 전제는 분할되어 있는 각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투명하게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공리가 온전히 실현되는 일은 희박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마침내 열려진 민주주의의 공간은 나폴레옹을 집권시켰고, 바이마르공화국의 전무후무한 민주주의는 히틀러를 집권시켰다. 이렇게 대표의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이유가 대중들이 무지했다거나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환상에 말려든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작 잘못된 것은 투명한 대표가 있을 수 있다는 착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역설은 나뉘어져 있는 각 부분을 대표하는 것이 대표가 아니라 그런 나뉨 없는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유일하게 대표하는 행위라는 논리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 각 계급은 자신을 대표하는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투표의 결과는 언제나 민주주의적 대의/대표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표가 아무도 대표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대표가 오직 전체를 대표하기라기 보다는 대표 없는 대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그런 전체를 대표하는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부분이면서 전체인 척하는 부분은 누구일까. 그것은 한국에서라면 중산층인 줄 착각하는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와 다르지 않으면서 다른 처지라고 믿는 소자영업자 계층일 것이다. 이들은 세금을 더 물지 않고도 복지가 늘어나길 원한다. 집만 장만하면 그걸 되팔아 재산을 불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실현가능성이 있는 공약만이 진짜 공약이라고 믿는다.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 없는 변화를 가리키는 이름이 전체일 것이다. 전체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대표의 논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분들의 조화롭고 투명한 대표라는 대의민주주의적 대표와 전체와 전체 아닌 것의 대표로서의 급진민주주의적 대표이다. 물론 우리는 온전한 대표가 이뤄지는 것은 오직 후자를 통해서일 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러할 때 부분들은 자신들을 부분으로서 온전히 대표할 수 있다. 이런 정치의 기하학이 잊혀질 때 언제나 보수세력은 성공을 거둔다. 보수세력의 모토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정치."

서동진 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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