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사랑받는 고전도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원작 연극뿐 아니라 영화, 뮤지컬 등 여러 형태로,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거듭 태어나는 불멸의 두 연인이 이번엔 문화대혁명기 중국으로 갔다.
국립극단이 중국 연출가 티엔친신 연출로 내놓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6~76년 중국을 뒤흔든 문화대혁명으로 배경을 옮겼다. 문화대혁명의 선봉은 두 주인공과 같은 연배인 10대 홍위병이었으니, 나름 설득력이 있다. 로미오(배우 강필석)는 홍위병 중에도 가장 극단적인 '공련파' 행동대장이고, 줄리엣(배우 전미도)은 공련파의 적인 '전사파'군대 사단장의 딸이다. 중국 작가 레이팅이 각색했다.
티엔친신은 활기찬 무대를 선보였다. 경사가 있는 거대한 지붕에서 주요 장면이 펼쳐진다. 배우들은 비탈진 지붕에서 달리고 구르고, 담벼락을 오르내리고, 전봇대 전선을 타고 움직이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지붕을 들어 올리면 줄리엣이 사는 군대 병영이 됐다가 두 연인이 최후를 맞는 영안실도 된다. 붉은 완장과 초록색 제복, 자전거와 군용 지프, 청바지와 운동화, 거수 경례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붉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합창하는 노래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시대의 맹목이 삼켜 버린, 그러나 끝내 정복당하지 않는 사랑에 바치는 청춘 찬가다.
원작의 골격을 대체로 충실하게 따라가되, 간간이 코믹한 요소를 집어 넣어 무거움을 덜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소년 소녀답게 더 발랄하고 변덕스럽고 용감해졌다. 줄리엣에게 청혼했던 귀족(이번 작품에서는 고위공무원)이 로미오가 아닌 줄리엣 손에 죽고, 두 집안이 끝내 화해하지 않는 것은 원작과 달라진 대목이다.
경쾌하고 역동적인 무대의 참신한 감각은 이 작품의 장점이다. 그러나 사랑의 비극이 그리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무척 아쉽다. 사랑에 들뜬 청춘은 잘 드러나지만, 첫만남에서 죽음까지 설렘과 두려움, 분노와 절망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두 연인의 다양한 감정을 별로 섬세하게 그리지 못해, 가장 슬퍼해야 할 순간에도 뭉클함이 별로 없다.
공연은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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