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케이타운의 한식열풍
낯설지만 강한 맛에 매료
30분 줄서고… 손님 80% 외국인
불고기·갈비·김치서 메뉴 확장
실내포차서 소주 즐기기도
비결은 뭔가
'여러 음식 조금씩' 현지화 노력
퓨전음식도 정통한식 바탕으로
'푸드 한류'를 위해
다른 장르보다 파급력 훨씬 우월
한국음식문화 전반 이해 도와야
정부, 식재료 해외유통망 지원을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7일 금요일 저녁. 맨해튼 32가 케이타운(K-Townn)의 한식당 '큰집' 앞에서 미국인 10여명이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다. 이들은 7시 퇴근을 하자마자 식당을 찾았지만 30~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당 통로를 따라 또 다른 10여명이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선 채로 메뉴를 보며 음식을 주문한다. 박혜화 사장은 "6시부터 10시까지는 거의 자리가 없고 주중이건 주말이건 항상 기다리는 줄이 있다"며 "오늘은 그나마 비가 와서 이정도"라고 말했다. 100석 규모인 큰집의 이날 저녁 손님은 약 400명, 이 중 80%는 비(非)한인이었다.
맨해튼 케이타운은 비한인에 의해 장악된 지 오래다. 갈비와 불고기, 김치로만 한식을 논하던 것도 이제 옛말이다. 실내포장마차에서 부대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푸른 눈의 미국인들은 더 이상 신기한 풍경이 아니다. 한식이 뉴욕의 주류 미디어와 대중으로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2, 3년 전. 이런 '푸드 한류'의 중심에는 20~30대의 한인 1.5, 혹은 2세대들이 있다. 현지인의 정서와 통하는 맛, 그리고 젊은 감각이 비결로 꼽힌다.
푸드 한류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전세계 한식당 가운데 최초로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1개)을 받은 '단지'의 대표 김훈(40ㆍ후니 킴)씨를 만났다. 뉴욕시에는 총 2,500여 개의 식당이 있고 이 중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곳은 896개, 별을 받은 곳은 66곳이다. 이 가운데 한국음식점은 단지와 '정식'이 있다. 전세계에서 한국음식점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곳은 딱 두 곳뿐이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에게 한식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바로 맛이다. 일식이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음식이라면, 한국 음식은 맛이 '강하기(Bold and Strong)' 때문에 맛 자체가 무척 인상적이다. 영화 장르로 비유하자면 일식은 로맨틱 코메디, 한식은 액션 영화다. 예전에는 이국적이라고 생각해 낯설게 느꼈다면 요즘에는 그런 맛조차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고기, 비빔밥, 김치를 제외하고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한국음식은? 단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음식은?
"전부 다다. 몇 가지 대표되는 한국 음식만 알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외국인들도 한국음식에 대해 많이 알고, 거의 모든 한국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실제로 단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인기 음식은 보쌈이다. 보쌈이 인기 있는 이유? 그들이 자주 먹는 돼지고기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돼지고기니까. 오이 소박이도 인기가 높다. 서양인들이 오이피클을 먹어와서, 오이 절임에 대해 익숙해 있는데다 아삭한 식감과 신선함 때문이다."
-한 상에 차려 먹는 한국의 식문화가 외국에서도 통할까?
"아니다. 음식은 온도가 중요하다.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먹어야 한다. 특히 한식은 찌개나 찜 등 온도가 맛과 연결된다.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서 맛을 음미해야 한식의 장점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순서와 먹을 때의 온도가 무시된다는 것은 한식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김씨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재료에 들이는 유별난 공이 맛으로 연결돼 소문이 난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화학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는다. 닭은 브루클린 농장에서, 쇠고기는 콜로라도에서 공수하고 야채는 파머스 마켓에서 직접 고른다. 닭은 잡자마자 가져 오기 때문에 식당에는 따뜻한 상태로 도착한다. 김치는 그의 장모가 직접 담근다.
-퓨전 한식에 대한 생각은?
"퓨전이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건, 첫째, 맛이다. 예를 들어 떡볶이에 치즈를 얹으면 퓨전이다. 헌데 치즈 떡볶이가 정말 맛이 있다면 된 거다. 최근 한국 이태원에서 퓨전 타코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뉴욕에서 맛본 어느 정통 멕시코 타코보다 훨씬 좋았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째는 퓨전 메뉴라고 하더라도 한식이 꼭 그 기반이 돼야 한다. 모양에 변화를 주더라도 맛은 정통 한식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지에서 파는 슬라이더(Sliderㆍ작은 사이즈의 햄버거)의 경우 아래위 빵만 빼버리면 영락없는 불고기다. 먹기에 편리하도록 변형됐지만 맛은 불고기 그대로다."
-단지?메뉴는 주 요리를 먹기 전에 소량으로 나오는 타파스 스타일로 구성돼 있는데.
"'한가지 음식을 4입(bites) 이상 먹으면 혀가 맛에 무뎌진다'는 셰프 토마스 켈러의 말에 동의한다. 양이 많으면 먹는 동안 뜨거운 음식은 식고, 차가운 음식은 온도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 음식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이 내가 타파스 스타일로 메뉴를 만드는 이유다. 그리고 많은 양의 한가지 음식을 먹기보다 조금씩 여러 가지 음식을 찾는 뉴요커의 취향에도 타파스는 잘 어울린다."
싸이의 인기 등 다른 문화 장르에 비해 한국 음식이 갖는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지적에 김씨는 "가능성을 봐 달라"고 말했다. 취향과 연령에 따라 침투 대상이 제한적인 음악이나 영화보다 음식이 한류 콘텐츠로서 훨씬 파괴력이 있다는 것. 그는 "'강남스타일' 때문에 한국을 방문할 사람이 많을지, 한식을 먹기 위해 가는 사람이 많을지 생각해 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외국인이 한국음식을 즐길 때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계해야 할 것이 다이너 식이다. 다이너는 모든 음식을 판다. 파스타, 햄버거, 스테이크 모든 게 다 있다. 메뉴가 거의 100가지다. 메뉴가 너무 많은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또 식당에 올 때는 밥만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음식 문화를 경험하러 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식당들이 그런 의식이 부족하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함께 나눠먹는 문화, 음식은 어떻게 조리하는지 등등 손님들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고기는 쌈을 싸서 먹고, 비빔밥은 비벼먹고, 불에 고기를 함께 구워먹고 국을 나눠먹고 등등 음식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와야 한다."
-푸드 한류를 위해 한국 정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유명 요리사들이 해외에서 자신의 식당을 열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미국이든 어디든 자신이 사는 곳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뉴욕에서 자란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먹는 떡볶이가 별로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해 떡볶이를 먹어보고 놀랐다. 이곳(뉴욕)에서 먹은 한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면, 외국인들이 또 다시 한식을 먹으려 하겠는가? 그리고 한식을 먹겠다고 한국에 가겠는가? 그리고 한국의 된장과 고추장 등 한국산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통망이 잘 확보됐으면 좋겠다. 내가 일하던 일식당 '마사'의 경우, 일본 현지에서 잡힌 생선이 비행기를 통해 JFK공항, 마사 식당으로 매일 공수됐다. 된장이나 고추장은 비행기가 아닌 배로도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제품들이니 일본보다 훨씬 쉽게 한국산 재료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이 필요하다."
▦김훈 셰프는
10년 전 의과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요리에 투신했다. 의대 대신 요리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1년간 말을 건네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학교(FCI)를 졸업하고 뉴욕 최고수준의 식당인 다니엘과 마사에서 각각 2년을 근무했다. 2010년 12월 이름처럼 자그마한 36석의 한식당 '단지'를 맨해튼 미드타운에 개점했다. 전공을 살려 한식 조리에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했다. 예를 들면 갈비찜은 325도로 2시간 45분을 조려야 고기가 연해지면서 젤라틴이 유지,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점 후 10달만인 2011년 10월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별을 받은 셰프가 됐다. 올해도 별을 받아 명성을 이었다. 최근 주막 스타일의 바(bar) '한잔'을 개점했다.
최희은기자 choihe
뉴욕=글ㆍ사진 미주한국일보 최희은기자 choih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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