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23ㆍ서울시청)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발목 통증에 시달려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불가능했지만 투혼을 발휘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롭게 썼다. 여자 500m 이상화의 금메달은 코칭스태프는 물론 전문가들도 기대하지 않은 기적 같은 결과였다.
하지만 투혼의 대가는 혹독했다. 작년 1월 열린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쳤고 같은 해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밴쿠버 신화의 주인공은 불과 1년 만에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부상에서 완쾌한 이상화가 이번엔 세계 빙속 역사를 새롭게 쓰며 무한 질주를 하고 있다. 이상화는 지난 16일 중국 하얼빈에서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차 대회 여자 500m 디비전A(1부리그) 2차 레이스에서 37초65만에 결승선을 끊어 우승했다. 1차 대회와 4차 대회 여자 500m에서 1ㆍ2차 레이스를 모두 석권한 이상화는 5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도 37초94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이상화는 올 시즌에 이 종목 연속 금메달 행진을 6회째로 늘렸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그 동안 한 종목에서 월드컵 6회 연속 정상에 오른 선수는 없었다. 예니 볼프(독일), 위징, 왕베이싱(이상 중국) 등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맞수들은 아직 금메달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 이상화가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빈틈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트가 늦다는 약점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상화의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는 모태범(23ㆍ대한항공)이나 이강석(27·의정부시청) 등 남자 선수들 못지 않다. 이는 6개 대회의 기록이 37초대로 꾸준한 이유기도 하다. 예니 볼프와 위징이 37초대와 38초대를 오가며 기복을 보인 것과 확연히 다르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19일 "스케이팅에 물이 올랐다. 기술과 정신력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며 "표정에서도 여유가 느껴진다. 그 동안 훈련을 열심히 한 성과가 월드컵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감독을 맡았던 김 전무는 이어 "부상을 안고 금메달을 딴 올림픽 때도 대단했고, 올 시즌 6회 연속 우승을 한 것도 엄청나다"며 "여자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다. 지금의 상승세가 시즌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상화의 최종 목표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금메달이다. 자칫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2연패라는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또 세계 신기록에 대한 욕심도 있다. 위징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기록(36초94)은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김 전무는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소치 올림픽 금메달은 물론 세계 기록도 충분히 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22, 23일 내년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을 겸해 치러지는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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