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과 메스꺼움을 섞은 무기력증이 안데스의 고산증이었다. 쿠스코 공항에 내려 잉카 제국의'신성한 계곡'으로 가는 길. 해발 3,500m쯤 됐다. 조그만 오르막에도 숨이 가빴다. 고산증에 효과가 있대서 씹은 코카나무 잎사귀는 덖지 않고 볕에 말린 찻잎 맛이 났다. 멀리 보이는 산정엔 눈이 덮여 있었다. 만년설이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감탄할 기운이 없었다. 잉카의 영토를 밟으려면 이 고산증부터 이겨내야 한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내리막 비탈길을 한참 터덜거린 뒤, 버스 차창으로 깊게 패인 골짜기가 다가왔다. 우루밤바강(江). 태양의 제국을 키워낸 젖줄이다.
신성한 계곡은 쿠스코를 중심으로 약 50㎞ 반경 안에 있는 우루밤바강 유역을 일컫는다. 온화한 기온과 풍부한 강수량으로 이곳은 수천 년 전부터 남아메리카 농경의 중심지였다. 감자, 고추, 옥수수의 원산지가 이곳이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행객들로 사철 붐비지만 주업은 아직 농사다.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소가 쟁기를 끌었다. 유네스코가 보호해야 할 유산으로 지정한 유물은 겨우 수백 년 전의 것이었는데, 들판에서 일하는 그을린 얼굴의 풍경은 석기 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워싱턴이란 이름의 메스티소(혼혈)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종 건들건들하던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여기선 3모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돈은 못 번다. 도시에 나가면 여기보다 나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그래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쿠스코 지역)가 900만 리마와 200만 아레키파 주민을 먹여 살린다.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의 생명이고 전통, 우리의 열정이다."
차창으로 스치는 집은 모두 흙빛이었다. 집 짓는 재료라곤 약간의 유리와 나무, 그리곤 거칠게 반죽해 메주처럼 만든 흙벽돌이 다다. 철 성분이 많아 붉은 빛이 도는 그 흙벽돌을 한국에 가져다 놓는다면, 분명 최고급 친환경 재료 대접을 받을 듯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시멘트가 비싸 흙벽돌을 만든다고 했다. 30~40년에 한 번씩 온다는 큰 지진이 나면 흙집은 모두 바스라진다. 그리고 다시 산의 흙을 캐다 집을 짓는단다. 천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됐을 삶의 모습이다. 지붕마다 흙을 구워 만든 장식물이 올려져 있었다. 주술적 의미가 있는 듯했다. 토테미즘의 시대의 흔적인 듯한 소 두 마리, 그리고 스페인 식민주의의 유물인 십자가였다.
버스가 시끌벅적한 동네로 들어섰다. 해발 고도가 2,700m까지 낮아져 걷기가 좀 편해졌다. 올랸타이탐보. '탐보'란 잉카 시대 전령의 휴식처이자 창고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제국 전역에 30~40㎞마다 탐보가 있었다. 지금은 대개 마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올랸타이탐보에는 하늘에 닿을 듯한 요새와 신전, 잉카 시대의 옛 골목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이 붐비는 건 걸어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이들이 이곳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잉카 제국은 4,000㎞에 이르는 도로를 닦았고, 지금 남아 있는 길은 '잉카 트레일'로 불린다. 올랸타이탐보에서 마추픽추까지,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잉카 트레일은 전세계 도보여행자들의 로망이다.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다가 기차를 탔다.
우루밤바강을 따라 놓인 철로 위를 세 시간 가량 달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헤어핀으로 꺾이는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눈 앞에 나타났다. 마추픽추.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신과 콘도르와 황제의 신성한 땅. 대륙과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견디고, 안데스의 고산증에 시달리고, 어처구니없이 비싼 교통비와 입장료를 감내하고도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곳. 16세기 스페인 침략자들은 잉카의 도시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래서 원형이 남은 곳이 거의 없다. 마추픽추는 높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덕에 잉카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다. 폐허가 됐다가 서양인 과학자에 의해 다시 발견된 것이 1911년. 구름에 갇혔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마추픽추는 아름답다기보다 신비로웠다.
마추픽추는 잉카의 아홉 번째 왕인 파차쿠티의 여름 별장이었다. 태양의 신전, 콘도르 신전, 왕궁 등 신과 왕족의 집이 제국의 영광을 짐작하게 한다. 계단식 경작지의 모습 또한 장엄하다. 마추픽추 건설은 파차쿠티가 죽고 침략자들이 도착한 뒤에도 계속됐다. 노예들의 노동은 스페인군이 파차쿠티의 미라를 불태웠을 때야 끝이 났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을 벗어났다. 이런 곳에선 공부보다 그저 느껴보는 게 진짜 여행이라고 나는 믿는다. 혼자서 2㎞ 정도 떨어진 '인티 푼쿠(태양의 관문)'로 올랐다. 유럽에서 온 듯한 여행자들이 눕고, 앉고, 기대어 말없이 공중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멀리서 본 마추픽추에 거짓말처럼 또렷한 무지개가 내려와 걸렸다.
쿠스코 지역엔 마추픽추 말고도 볼 거리가 많다. 우선 시내. 시내엔 쿠스코(cusco)가 아니라 코스코(qosqo)로 표기돼 있다. 코스코는 '세상의 배꼽'이遮?뜻인데, 16세기 스페인인들은 발음이 비슷한 스페인어 쿠스코(강아지)로 표기했다. 도시 명칭이 정식으로 다시 코스코가 된 건 1990년대의 일이다. 잉카 태양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세운 성 도미니크 수녀원, 잉카인의 석조 기술을 알 수 있는 '12각석' 등의 유물이 시내에 모여 있다. 외곽의 잉카시대 요새인 삭사이와망 유적에서도 돌을 다루는 잉카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피삭, 친체로 등의 마을에서는 새카맣게 탄 얼굴 속에 담긴 안데스 사람들의 순박한 표정을 볼 수 있다. 기니피그를 화덕에 구운 '꾸이'라는 음식이 이 지역의 별미다.
태초의 바다 느낌… 물과 하늘 경계를 잊다
●해발 3820m 티티카카 호수
유상호기자
해발 3,820m에 위치한 바다. 티티카카는 호수인데 바다라는 느낌을 준다. 길이 165㎞, 폭 65㎞. 가릴 것 없이 하늘과 맞닿은 수면이 태초의 바다가 그러했을 것 같은 무구한 고요로 충만하다. 수면은 하늘빛을 꾸미지 않고 반사해 하늘이 호수에 담겨 있는 듯했다. 안데스 고원에서 만나는 선경(仙境).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이 호수에 사람이 살았다는데, 잉카인들은 자신의 선조가 이 호수로부터 생겨났다고 믿었다고 한다.
호수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120종의 조류가 살고 있고 과거엔 어종도 풍부했다고 하나, 송어 같은 외래종의 유입으로 어종이 크게 줄었다. 대신 호수에서 잡은 싱싱한 송어 요리가 유명하다. 호숫가에 있는 도시 푸노도 색다른 여행지이지만, 여행의 핵심은 역시 호수 안에 있는 섬들이다. 전통 복장과 전통 생활방식, 그리고 비록 그것이 관광객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도, 오래된 삶의 속도를 섬 사람들은 지키고 살아간다.
이 호수에는 움직이는 섬들이 있다. 갈대로 만든 인공섬이 70여개나 되는데 우로스라고 부른다. 잉카 시대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뭍을 떠나 좁은 갈대섬 속에서 대를 이어 왔다. 지금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3,000명 가까이 된다. 짧은 시간에 그들이 스스로를 유폐한 까닭을 모두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의 표정에 부족함이 없는 듯 보였다. 타킬레, 아만티 등의 섬에서도 현대 문명의 속도를 여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여행수첩
●페루 내륙 고원지대를 여행할 땐 고산증에 주의해야 한다. 혈중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코카차를 마시거나 잎을 씹는 것이 효과가 있다. 호텔 등 곳곳에 산소 호흡기가 비치돼 있으므로 필요할 경우 이용한다. ●올랸타이탐보에서 마추픽추까지 기차 요금은 왕복 80달러부터 560달러(입장료, 식사 등 포함)까지. 마추픽추 입장료는 131솔(약 5만7,000원). 쿠스코 지역을 둘러볼 땐 16곳의 유적ㆍ관광지를 묶은 통합 입장권(130솔)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티티카카 호수로 가기 위해서는 훌리아카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푸노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다. 아만티 섬, 타킬레 섬에서는 민박집에 묵으며 안데스 고원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 있다. 페루관광청 한국사무소 (070)4323-2560
쿠스코(페루)=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