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4400가구집값 곤두박질에 올해 분양 10년만에 최저입주 물량도 감소해 수급불균형 심화 우려
서울 강남구의 한 건설회사를 다니는 정모(32)씨는 얼마 전 경기 용인시에 구입한 아파트 입구에만 서면 울화통이 터진다. 결혼을 앞두고 신접살림을 차리기 위해 빚을 내 마련한 생애 첫 집이다.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은 예상했어도 회사가 시공한 아파트라 직원 할인으로 구입해 부담은 갖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 하락 폭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이제는 분양가의 60% 선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 회사에는 분양자들로부터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정씨는 "집과 직장이 하루아침에 위태로워 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집 걱정 때문에 불면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정씨 만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누린 2000년대 중후반 대출을 끼면서까지 수도권 아파트를 분양 받은 '하우스 푸어' 대부분이 겪고 있는 공통된 고통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 전망도 어둡다는 것이다. 미분양 주택은 갈수록 쌓여가고 올해 말이면 끝나는 한시적 양도세ㆍ취득세 감면 혜택이 대선 이후에도 유지될 지 아직 낙관하기 어렵다. 집값 곤두박질로 인한 거래실종에 서민들의 전세난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18일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지난달 19~30일 조사한 수도권 65개 아파트 단지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4,400가구에 달했다. 경기도가 2,600여 가구로 가장 많고, 인천이 1,250여 가구, 서울이 610여 가구다. 경기도의 준공 후 미분양들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1,116만원으로 도내 평균 분양가 1,013만원 보다 무려 10%나 높다. 분양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방증이자 미분양이 쌓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미분양이 누적되며 올해 분양실적은 2003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년 입주물량은 올해보다 더욱 줄어들 전망이어서 전세난 가중이 우려되고 있다. 부동산 114는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이 최근 5년 평균보다 무려 38%가 축소될 것으로 분석했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김은진 책임연구원은 "이른바 '깡통주택' 보유자가 20만명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주택구입 여력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내년에도 전세난 등 수급불균형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년 매매가 정체와 전세가 상승을 예상했다. 송인호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은 "주택 거래는 기대 가격이 상승할 때 활발하지만 기대 가격이 오를 요인이 없어 전세로 수요가 집중될 것"이라며 "금리가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높은 전세가를 부를 가능성이 크고 전세에서 월세 전환률도 올해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어 "현 부동산시장의 궁극적인 문제는 주택 가격 불안정이 아니라 거래량 부진에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정책적으로 거래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몰두하다 부동산 위기를 부채질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이미 체질이 엉망이 된 지방공기업들이 공사채를 발행해 개발사업을 추진해도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부채만 늘리며 부동산시장을 더 어렵게 한다"며 "지자체는 감당할 수 있는 사업 위주로 추진 순위를 정한 뒤 불필요한 사업들을 시급히 정리해야 하고, 지자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재정비사업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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