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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정재근 "우리가 살아나야 농구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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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정재근 "우리가 살아나야 농구도 삽니다"

입력
2012.12.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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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와 연세대 농구부가 동반 상승해서 최고 자리를 다퉈야 농구 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서로 정상에서 만나 화려한 농구대잔치 시절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민형 고려대 감독)

"그 동안 모든 스포츠의 중심에 있던 연ㆍ고대는 지난 몇 년간 서로 한 차례씩 내분을 겪었습니다. 비록 잃어버린 시간 탓에 좋은 선수들을 다른 대학 팀에 뺏겼지만 차츰 정상화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조만간 결승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정재근 연세대 감독)

한국 농구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 부진으로 아시아 2인자 자리는 뺏긴지 오래고, 프로농구는 스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한국 농구의 젖줄인 아마농구는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다. 1980~90년대 인기 스포츠로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농구대잔치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농구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당시 활약했던 이민형(47) 고려대 감독과 정재근(43) 연세대 감독은 최근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느낀다. 연ㆍ고대는 농구대잔치 시절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며 전국을 농구 열기에 빠트렸다. 1990년대에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이상 연세대), 전희철, 현주엽, 김병철(이상 고려대)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강호의 자리를 중앙대, 경희대에 내주고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21일 개막하는 2012 농구대잔치를 앞두고 만난 이민형 감독과 정재근 감독은 2010년대를 연ㆍ고대 농구 부흥 시기로 잡고 있다. 또 선의의 경쟁을 통해 예전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20년 지기, 라이벌 넘어 우애 좋은 형-동생

이민형(이하 이)=정 감독과는 4년 차이가 나서 대학 시절에 맞붙지 못하고 실업 팀 기업은행 때 처음 대결을 해봤습니다. 90년대 농구 선수 중 몇 명 인정 안 하는데 정 감독은 탄력도 좋고 미들 슛이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지저분하게 수비할 수밖에 없었죠.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을 때는 친한 형, 동생으로 잘 지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재근(이하 정)=지저분하게 수비 했다고요? 누가 건드리면 저도 거칠게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 때 당시 이 감독은 상당히 깔끔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물론 기술도 좋았습니다. 코트 밖에서는 소고기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줘 이 감독을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정기전

이=1987년 4학년 때 마지막 정기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경기 종료 10초를 남기고 동점 상황에서 상대 파울을 얻어내는 3점 플레이로 결승골을 넣었죠. 유종의 미를 제 손으로 장식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4년 동안 정기전 성적은 2승1무1패였습니다. 무승부에 대한 사연도 잊지 못합니다. 1986년인데 서로 간의 몸 싸움이 워낙 치열해 많은 관중이 우유를 코트로 던졌습니다. 아무리 닦아도 자꾸 미끄러지고 해서 결국 경기가 중단됐고, 무승부로 남았습니다.

정=저는 네 번 모두 다 이겨 특별한 추억이 없습니다. 역전을 하고 힘겹게 이기면 기억에 남을 텐데 매번 20점차 이상으로 이겼죠. 그냥 나가면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동기인 고려대 정인교와 강병수에게 상당히 미안했죠. 자주 이기니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최희암 감독님이 광고를 찍으러 나가며 자주 자리를 비워 훈련도 대충 하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도 한 인기 했죠

이=대학 시절 항상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녔지만 팬이 많았습니다. 1984년 아시아청소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용산고 트리오'로 불린 저와 허재, 한만성이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데 주역이 됐습니다. 1학년 때였는데 당시 고려대 체육부 전체 통틀어 야구의 선동열만큼 팬레터를 받았습니다.

정=4학년 때 이른바 오빠 부대가 시작됐습니다. 후배로 오성식,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이 있어 매일 체육관에 50명, 숙소 앞은 100명 정도가 찾아왔죠. 발렌타인 데이에는 서대문우체국에서 초콜릿을 담은 트럭 몇 대가 오기도 했고, 팬레터는 선수당 라면 박스 하나씩은 왔어요. 전 여성 팬 보다 남성 팬이 많았습니다. 수염도 나고 외모도 좀 그래서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4학년이면 완전 어른이잖아요.

대학농구 스타, 테크니션 기근? 천만의 말씀

정=현재 대학 농구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습니다. 다만 관심의 부족일 뿐이죠. 농구대잔치 시절 우지원이나 문경은, 이상민은 지금 선수들처럼 파워 있고 빠르지 않았습니다. 개인기 없이 슛 쏘고 몇 점만 넣어도 언론에서 '황태자', '산소 같은 남자'로 많이 띄워주다 보니 자신감도 붙고 실력도 늘었습니다. 팬들도 언론 보도에 많이 세뇌됐죠. 그러나 지금은 대학 농구 챔프전을 우승해도 신문 뒷면에 작게 나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최강전을 통해 허재 감독 아들인 허웅이나 고려대 이종현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기는 좋지 않았지만 대학 스타를 알리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이=팬들 앞에서 어필할 수 있는 건 기량이 먼저입니다. 외모는 그 다음이죠. 우리 팀에 있는 이승현, 이종현, 문성곤, 박재현 등은 스타성을 충분히 갖췄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현재 고려대 농구부 서포터스인 '안암골 호랑이'는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활동한 몇 천명의 회원들이 여전히 응원을 보내주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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