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지난 11월 동시 게재한 한일 작가 릴레이 편지 후속으로 소설가 김연수와 히라노게이치로 (平野啓.郎)의 글을 19, 20일 연재합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 자민당 재집권 등으로 한일 관계의 경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나라의 친분 있는 작가들이 안부를 주고 받으며 어떻게 시대 상황을 인식하고 글을 쓰는지 이야기하는 공동기획입니다. 김연수는 한국어 트위터를 운영할 정도로 지한파인 히라노가 출판기념회 등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사회를 보는 절친한 사이입니다. 앞서 두 신문은 지난 11월 20, 21일자에 소설가 박성원과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의 글을 실었습니다.
순식간에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처럼 이 인생에서 2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군요. 2010년 모지코(門司港)의 따뜻한 12월에 우리가 만나고,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검은 해협 저편, 반짝이는 시모노세키(下關)의 불빛을 바라보며 도시와 도시 사이의 바다란 참으로 아름답구나, 라고 감탄하던 밤은 여전히 제게 흐뭇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추억만큼이나 소중한 건 자정이 지난 깊은 밤, 모지코 시장의 작은 식당에서 일본의 소설가, 시인, 편집자들과 한국의 문인들이 함께 어울려 맥주를 마시던 일입니다. 그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아, 이 사람들도 일본에서 밤새 술을 마시는구나. 우리도 한국에서 밤새 술을 마신다. 그렇다면, 됐다. 우린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이니까.
그날 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린 같은 종류의 인간이니까 아마 히라노 게이치로씨도 그날 밤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맞다고 해주십시오. 어쨌든 제가 기억하는 건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밤새 불이 켜진 동아시아의 주점들이 주는 안도감이랄까요.
2년 전의 기억은 이토록 가까운데, 그 동안의 일들은 우리를 해협 저편의 불빛만큼이나 멀어지게 했습니다.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후쿠시마의 원전이 파괴됐습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동아시아의 바다로는 긴장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2년마다 3개국 문인들이 만나 동아시아 문학의 발전을 위해 대화하자는 계획이 정치적 긴장 탓에 올해에는 무산됐습니다. 주점의 불은 꺼졌고, 밤은 어둡고, 바다는 검게 변했습니다.
한국 독자의 호의에 힘입어 히라노씨의 트위터는 실시간 한국어로 번역됩니다. 덕분에 도호쿠 지진이 일어났을 때, 히라노씨의 서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저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책은 모두 제자리에 꽂혔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하긴 당연합니다. 지진으로 서가가 무너졌다고 해서 다시는 책을 꽂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영영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생각할 바보는 없겠죠. 우리가 여전히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면. 조만간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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