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온갖 소식에 접하면서 내내 언짢았던 게 있다. TV나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는 물론이고, 아나운서들까지 누구 하나 '부동층'을 '부-동층'이라고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약간의 한자 감각만 있어도 '부동층(不動層)?'하고 잠시 어리둥절할 법한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부동층'의'부'를 짧게 읽으면 '콘크리트표', 즉 고정표의 주체일 수는 있어도 여론조사에서 '모름ㆍ무응답'으로 분류되는 부동층(浮動層)일 수는 없다.
■ 현재 거론되는 '부동층'은 고전적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칼 만하임이 에서 개념정립을 시도한 '부동 계급'은 '계급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추정과 달리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귀속계급의 계급의식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의식적 부동층의 전형이 지식계급으로, 이들은 계급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역사현실을 동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무의식적 '부동 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대상이 되기 쉽다.
■ 부동층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거나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늘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ㆍ문재인 후보 사이에서 선택을 망설이거나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강남 좌파'는 고전적 의미의 부동층이지만, 확고한 지지성향에 비추어 선거에서는 부동층이 아니다. 그 동안의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은 10% 내외, 약 400만 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얼마나 투표에 참여하고, 어느 쪽으로 그 표가 쏠릴지를 두고 박ㆍ문 후보 모두 애를 태워야 했다.
■ 10% 내외의 부동층이 이처럼 중요해 진 것은 유난히 고정표가 많은 한국정치 지형 때문이다. 여야 각각 40%는 될 부동표(不動票)가 부동표(浮動票)의 가치를 키워온 셈이다. 이번 대선의 여야 맞대결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강고하다. 가장 유사했던 2002년 대선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3.9%를 득표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산표(散票)조차 없다. 투표의 심판 기능을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부동층이 늘어 정치의 맛이 살아나길 꿈꾼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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