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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12월 19일] 대선의 날과 동지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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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12월 19일] 대선의 날과 동지 팥죽

입력
2012.12.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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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다음 다음 날, 12월21일이 동짓날이다. 한 해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 동지다. 하늘에서는 해가 남쪽 지평의 제일 낮은 고도에 머물고, 지상에서는 길고 깊은 밤이 세상을 뒤덮는 날이다.

어둠의 시간이 빛의 시간을 압도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고 어두운 밤을 어떻게 지새울 것인가? 인간의 문화사는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이 그 긴 어둠의 시간에 맞서기 위해 어떤 행사를 벌여왔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집집마다 밝게 불을 켜 어둠을 쫓는 행사다. 그 행사는 기도의식과도 같다. "어둠이여 가라, 빛이여 어서 와라."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유태문화의 연말 하누카 축제나 기독교 성탄절의 '촛불'켜기 행사도 문화사의 이런 기원의식들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행사가 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먹는 풍습이 그것이다. 상징적 해석을 시도하면 팥죽의 검은색은 밤의 색깔이고 어둠의 색깔이다. 우리의 전통적 상징체계에서 검은색은 '악귀'의 색에 연결된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동짓날 검은색 팥죽을 끊여먹는 것은 긴 밤의 어둠을 잡아먹고 악귀를 다스리려는 무의식적 기원행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지의 옛 풍습에서는 사람들이 팥죽을 끓여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집안 곳곳의 벽에 뿌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열치열처럼 검은색 팥죽으로 검은 악귀를 쫓아내고자 한 것이다. 팥죽에 흰색 새알심을 넣어먹는 풍습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몰라도 그 동그란 '새알심' 역시 상징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어둠에 잠긴 해의 상징 같다. 지금은 잠시 어둠에 붙들려 있을지라도 해는 곧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팥죽의 흰 새알심들이 솟아오르듯이.

오늘은 대선 투표일이다. 우리가 행사하는 표 한 장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동지 팥죽 같은 데가 있다.

오늘 투표소에 나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 큰 책임이 국민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것을 다시 절감한다.

첫째는 우리를 참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어둠, 부패, 오만의 세력이 누구인가를 공정하게, 그리고 엄격히 판단해야 하는 책임이다. 지난 두 달의 대선 기간을 지내오는 동안 우리는 그 판단에 필요한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 우리 자신이 그 어둠의 세력을 키우고 동조하는 쪽으로 표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이다. 이런 판단과 실행의 책임은 모든 국민의 의무이고 시민을 시민답게 하는 덕목이다.

투표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다. 대선 선거일의 시민은 특정의 정치세력을 봐주기 위해서, 무슨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투표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가 투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옳은 일, 정당한 일,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표는 투표한다는 사실만으로 무턱대고 옳은 일, 정당한 일이 되는가? 아니다. 거기에는 공정한 판단과 합리적 선택의 책임이 따라 붙는다. 내 판단과 선택은 내 개인이나 내가 속한 집단의 좁좁한 이해타산을 넘어 국민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존중하는 것인가? 이 나라를 공존의 정의와 상생의 윤리가 살아있는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인가? 합리성과 상식이 건강하게 작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인가?

대선이 총선과 다른 이유는 보편 이익과 보편 정의의 존중이라는 문제가 대선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된다는 데 있다. 이런 잣대는 무엇보다도 대통령 후보의 자격과 적격성을 판단하는 데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으로서의 막중한 공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판단력, 사고력, 지도력을 갖추고 있는가. 누가 민주주의 수호의 원칙과 민주적 가치에 더 충실한가. 누구의 정책공약이 민생 개선의 요청에 더 잘 부합하는가.

유권자들은 이미 권력의 오만에 취해 비합리적 주장과 어거지로 시민을 능멸하는 부패한 정치세력이 누구인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어두운 세력이 어디인지를 두 눈으로 보고 있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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