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것이 있다. 신전 기둥에 마차를 묶어놓은 매듭이다. 매듭을 푸는 이가 아시아를 지배하리라는 신탁이 내려졌지만, 매듭은 너무 정교해서 아무도 풀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마침 아시아 원정길에 오른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귀에 전해진다. 그는 문제의 장소로 간다. 그리고 매듭을 푸느라 끙끙거리는 대신, 칼을 빼들고 화끈하게 끊어버린다. 알렉산드로스, 즉 알렉산더 대왕은 그렇게 신탁의 주인공이 된다.
주어진 판을 뒤엎는 담대한 상상력과 단칼의 용기. 약관의 청년을 대제국의 지배자로 만든 원동력이다. 그는 후대에 많은 것을 남겼다. 그러나 매듭을 단박에 끊는 그 결기에 의해 이 세계에서 말없이 사라진 것들은 또한 얼마나 많을까.
나는 다른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노끈을 망가트리지 않고 매듭을 풀기 위해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애쓰는 사람. 풀지 못하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풀리지 않는다고 덥석 잘라버리지 않는 느린 뒷모습. 그런 알렉산드로스는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없겠지만, 그 시대의 삶이 피로 얼룩지는 것을 다소나마 막아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제삼의 알렉산드로스를 그려본다. 이 시대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한 개만이 아니니까. 끊어야 할 매듭과 풀어야 할 매듭을 구분해야 하니까. 끊을 때는 말끔하게 끊어야 하고 풀 때는 사려 깊게 풀어야 하니까. 어렵다. 이런 알렉산드로스에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