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국제지구·송도 랜드마크·일산 한류월드…글로벌 금융위기 후 자금난으로 수년째 지지부진"향후 전망도 어두워 사업별 재검토 후 수정해야"
시작은 요란하고 거창했다. 앞다퉈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내자 지역 발전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고 주변 부동산은 꿈틀거렸다. 하지만 2013년을 코 앞에 둔 현 시점에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대신 언제 주저앉을 지 모른다는 불안과 위기감만 쌓여가고 있다. 경기가 호황이었던 2000년대 초 중반 수도권 지자체들이 경쟁하듯이 추진한 초대형 개발사업들의 현 주소다.
총 사업비 30조원이 투입되는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사업주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는 지난 12일 30개 주주들을 대상으로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려 했지만 청약자가 나서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자본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올 9월 공사가 중단된 데 이어 또 다시 자금난에 휩싸이게 됐다. 계획했던 내년 초 보상과 착공은커녕 이대로라면 회사 유지 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사회에서 정상화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인 만큼 만약 사업이 좌초된다면 용산 일대에는 사상 최악의 후 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랜드마크시티 개발사업도 내년이 암담하기만 하다. 총 사업비 18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송도 랜드마크시티는 151층 인천타워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워터프런트 도시를 개발하는 대규모 사업이지만 수년째 답보상태다. 중심이 되는 인천타워는 2008년 6월 기공식을 가진 뒤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아직까지 단 한 층도 올리지 못했다. 2013년 완공 목표는 오래 전 물 건너갔고,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인천시는 사업부지 일부를 사업시행자가 아닌 제3자에게 이미 매각했다. 시는 인천타워 층수도 낮출 것을 요구 중이다.
경기도가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알짜배기 땅에 2004년부터 추진한 총 사업비 5조9,000억원 규모의 한류월드는 8년이 지나도록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한류월드의 핵심인 테마파크는 2008년 5월 착공한 뒤 자금난으로 한 삽도 뜨지 못한 채 4년간 늘어지다 사업자인 한류우드㈜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대명호텔과 디지털방송콘텐츠지원센터 공사만 허허벌판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야심작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USKR)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다른 대형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자금조달이 문제다. 사업시행자인 USKR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는 올 9월 말 사업부지 소유주인 한국수자원공사에 땅값을 지급하지 못해 부지매매계약이 취소됐다. 기획재정부가 USKR 기반시설 설치를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했던 국비지원액 50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사업자는 자금난을 이유로 전체 사업부지 420만㎡중 155만3,700㎡만 우선 개발하고 나머지는 단계적으로 개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수공은 이를 거절했다. 일단 내년 초 부지매매계약을 다시 체결하기로 조율했지만 올해 개장을 목표로 2007년 말 시작된 USKR 사업이 언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처럼 위기에 놓인 수도권 대형 개발사업들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기 전에 추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업자들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점도 대동소이하다. 또한 이면에는 대형 개발사업을 서로 끌어오려는 수도권 지자체들 간의 치열한 유치경쟁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불패신화'를 과신하며 부동산 활황에 편승하려는 개발과욕이 현재의 부동산 위기를 부채질한 셈이다. 경기도가 추진한 황해경제자유구역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 수도권 단체장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었지만 이제는 가공할 후유증을 낳고 있는 뉴타운 사업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추풍낙엽처럼 주저 앉는 대형 개발사업들의 내년 전망은 암담하다. 책임지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국가경제는 물론, 서민생활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발사업이 잘못됐을 경우 책임소재를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은 '묻지마' 식 개발사업을 부채질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ㆍ국책사업감시팀장은 "2000년 중반 개발 붐이 일던 시절에 면밀한 검토도 없이 선거공약 등으로 제시하며 서로 앞다퉈 달려들었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 팀장은 "무리한 추진은 더 큰 손실을 불러올 수 있어 이제라도 사업별로 정확하게 재점검을 해 필요할 경우 규모를 축소하는 등 사업성과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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