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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복약 지도, 발로 뛰는 약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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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복약 지도, 발로 뛰는 약사들

입력
2012.12.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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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말이지 내가 4년째 먹던 협심증 약을 6개월 동안 하나도 안 먹고 있어."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 간석 4동 한 다세대 주택 방 안. 박인혁(가명ㆍ67)씨는 둘둘 말린 약 봉투 뭉치를 방 한쪽 구석에 있던 종이가방에서 꺼내 노윤정(29)약사에게 내밀었다. 박씨가 앉은 자리 옆에는 어림 잡아도 50개가 넘는 각종 약병과 약봉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박씨는 "가슴이 아프고 숨이 턱턱 막히는 증상은 술이나 담배를 많이 하면 정상인도 폐막이 두꺼워져 그럴 수 있는 거야. 심장이 문제가 아니라고 저기 의학서적에 다 나와있어"라며 두 평 남짓한 방 벽면을 가득 채운 낡은 의학서적들을 가리켰다.

박씨는 이어 약을 처방한 의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박씨의 하소연을 묵묵히 듣고 있던 노 약사는 심혈관 질환과 처방된 약의 기능, 박씨의 평소 생활 습관과 앓고 있는 당뇨병에 관해 10여분 동안 설명했다. 결국 박씨는 결국 "약사님 말에 따르겠다"며 다시 약을 먹기로 하고 곧 담당 의사를 찾기로 약속했다.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복약지도 사업을 벌이고 있는 여약사들이 있다. 인천 남동구 간석동 늘품약국의 노윤정 약사와 동료 최진혜(29)약사가 간석4동 주민센터와 연계해 방문 복약지도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2년 전 약국 문을 연 이후부터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 주민들의 '위험한 복약 습관' 때문이었다. 노 약사는 "한번은 가깝게 지내던 할머니 한 분이 약국에 오셔서는 '고협압 약을 안 먹고 나와 친구한테 빌렸다'고 하길래 살펴 봤더니 봉투 안에 있던 세 알 모두 당뇨병 약이었다"며 "정상인이 복용하면 자칫 저혈당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어서 정말 아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단지 돈 받고 약을 파는 사람일 뿐인가'라는 회의감도 직접 환자를 찾아 나선 동기가 됐다. 최 약사는 한 달에 서너 번 청심원을 사러 오는 50대 손님(고혈압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새벽 공사장에 일하러 갈 때마다 혈압 체크를 하는데 퇴짜 맞지 않으려면 혈압 안정을 위해 미리 먹어 둬야 한다고 말하더라"며 "청심원은 고혈압 치료제도 아닌데다 사람에 따라 복용 후 졸음이 올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고 설명했지만 생계가 달린 문제라 극구 말릴 수도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약사가 져야 하는 책임은 약의 판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위해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는 게 최 약사의 설명이다. 복약 지도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환자들의 불신'을 꼽았다. 오랜 시간 질환을 앓으며 여러 병원을 전전한 환자들일수록 쌓여가는 약값 부담 때문에 '치료보다 약 장사에 더 혈안이 돼 있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노 약사는 "첫 방문에서는 '이 사람 약 팔러 온 거 아니야'하는 시선을 거두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데 끝내 상담을 거부할 때가 많다"며 "겨우 마음을 열어 처방된 약들을 확인 해 보면 중복 처방된 때가 굉장히 많아 엄청난 약값의 낭비를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인천=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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