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논란과 우여곡절, 그리고 예상 못한 반전 끝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민영화는 끝내 무산됐다. 현 정부 내에서 더 이상 매각절차 진행은 불가능해졌고, 결국 공은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마무리도 짓지 못할 민영화를 임기 말에 무리하게 밀어붙인 현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적 사안도 아니고 국가적 중대사도 아닌데 대통령 선거에 끌어들인 정치권도 문제란 지적이다. 2년을 넘게 끌어온 민영화는 대선까지 단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KAI의 대주주인 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며 지분매각 구상을 밝힌 것은 지난 2010년 8월. 이에 따라 한국정책금융공사는 보유지분 26.41% 중 11.41%과, 삼성테크윈(10%) 현대차(10%) 두산(5%) 등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합쳐 41.75%의 지분을 매각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KAI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대한항공이었다. 항공기업으로서 가장 시너지효과가 기대되는 기업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7월 매각공고가 나오자 유일하게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했다. 하지만 정책금융공사는 '2곳 이상이 참여해 유효경쟁이 돼야 한다'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접수기한을 8월말까지 연장했고, 추가 참가 업체가 없어 8월말 1차 입찰은 결국 유찰됐다.
9월 2차 매각절차가 진행됐지만 대한항공 외엔 희망기업이 없어 또 한번 유찰이 유력시됐다. 그러나 마감 30분전 아무도 예상 못한 현대중공업이 가세하면서 극적으로 2파전 구도가 성립됐다. 유효경쟁조건이 성립된 만큼, KAI민영화는 성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KAI 노조가 민영화에 강력 반발하고, KAI공장이 있는 경남 사천지역에서도 반대가 거세지면서 민영화엔 이상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들끓는 지역정서는 대선일정과 맞물리면서 폭발력을 냈고, 정치권에선 지역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민영화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16일 열린 대선후보 3차 TV토론회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KAI 민영화 자체를 반대했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역시 "신중해야 한다"며 민영화 절차 강행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틀 뒤면 대통령에 당선될 두 후보의 태도가 확인된 만큼, KAI민영화는 사실상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김 빠진 상태였지만 대한항공은 이날 입찰에 그래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인수가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측으로선 가격도 부담스러웠겠지만 무엇보다 전날 TV토론을 통해 KAI민영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힘들다고 판단해 불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새누리당 소속 정몽준 의원이 최대주주여서 불참할 것으로 보였던 현대중공업은 입찰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어차피 단독응찰은 유효경쟁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날 입찰도 결국 유찰로 끝났다.
정책금융공사측은 주주들과 3차 입찰을 할지, 수의계약을 할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건 어차피 차기 정부의 몫이다. 원점에서 재검토해 민영화 절차를 다시 진행하거나 아니면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2년 넘게 끌어온 민영화가 결국 대선 문턱을 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아예 일찌감치 민영화를 끝내던가, 아니면 애초부터 차기 정부로 미뤘어야 하는데 현 정부가 어설프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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