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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76>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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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76>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추억

입력
2012.12.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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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18일 저녁 노란 풍선이 가득한 서울 명동 거리의 인파를 헤치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대표가 나란히 연단에 올라섰다. 군중들은 '노무현!'을 외치며 환호했고 후끈 달아오른 현장의 열기는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대선 투표일을 하루 앞둔 마지막 유세였다.

하지만 노무현의 손을 잡고 단상에 오른 정몽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노후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표현할 때도 그저 묵묵히 박수만 보낼 뿐이었다.

명동 유세를 마친 노무현은 그동안 고생한 당직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승합차에 몸을 싣고 여의도 당사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서며 경비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넨 후 후보실로 향하는데 당사를 지키던 서갑원 팀장 등이 파래진 얼굴로 뛰어 나왔다. 비서진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 노무현은 10분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전격 철회했습니다." 경악이었다. 투표시간을 불과 8시간을 채 남기지 않은 시간이었다. 잠시 후 국민통합21 김행 대변인이 TV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애석한 말씀을 드리겠다. 정 대표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방금 명동 합동유세에서 노 후보께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려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며 정책 공조 정신에도 어긋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야권 단일화에 지지를 보내던 국민들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자정이 다 된 시각, 한화갑 대표와 당직자들은 국민통합21 당사로 향했고 정대철 선대위원장과 이재정 유세본부장은 반대하는 노무현을 설득해 정몽준의 평창동 자택을 찾았다. 하지만 정몽준은 면담을 요구하는 이들 앞에 특보였던 가수 김흥국을 보내 만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의 단초는 명동에 앞선 제일은행 앞 유세에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오른 노무현은'정몽준 대통령'이라 적힌 피켓을 보며 "다음 대통령이 정몽준만 있느냐, 여기 추미애도 있고 정동영도 있다"며 말을 이어갔고, 이때부터 정 대표는 얼굴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몽준의 지지 철회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문자 메시지를 통한 투표 권유로 급속한 결속력을 가져왔고 19일 투표일에는 각 투표소마다 젊은이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결국 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18대 대선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은 어떤 드라마가 쓰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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