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승부가 MB의 당선으로 갈린 다음날, 그러니까 2007년 12월 20일 오전에 자못 황당한 경험을 했다. 정부 부처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처음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주재한 '재야 원로'출신 위원장은 새 위원들과 수인사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먼저 일어섰다. 머쓱하다 못해 불쾌감이 들었다. 선거 결과가 어찌됐든, 맡은 직분은 다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10년 만에 재야로 되돌아간 그 원로를 그 뒤 뉴스에서 자주 만났다. 촛불 시위,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한진중공업 농성, 제주 해군기지 논란 등과 얽힌 반정부 집회나 시위 때면 거의 어김없이 앞줄에 섰다. 가장 최근에 뉴스에서 본 건 진보적 재야 원로들의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촉구 모임에서였다. "야권이 승리하면 다시 한 자리 하려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난 5년 내내 반정부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 어떤 형태로든 보답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다.
진보 원로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보수 원로 가운데도 DJ와 노무현 정부 10년간 반정부 활동에 몰두한 이들이 많다. 그 덕분인지 일흔 넘은 나이에 정부나 산하기관에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있다. 이게 MB정부의 실패에 큰 몫을 했다. 황량한 들판으로 쫓겨난 진보 쪽은 물론이고, 따뜻한 양지에 자리를 얻을까 기대하던 50ㆍ60대 보수 인사들도 앙앙불락 했다.
사회 원로와 지도층이 앞장서는 이런 선거 뒤 싸움, 이념과 정의를 앞세운 집단 쟁투는 대개 사적 이해가 얽혀있다. 그 바탕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적 욕망을 억누를 줄 모르는 천박한 풍토다. 정권을 잡은 무리부터 '승자 독식'의 행동양식을 게걸스레 좇는다. 선거에서 패한 집단과 지지 세력도 겸양과 자제의 덕목을 모른다. 선거 패배의 충격과 낙담을 스스로 다스리기는커녕 선거 다음날부터 승리한 집권세력의 발목 걸기에 나선다. 그러니 볼썽사나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익을 앞세우는 언론도 이념적 진영 사고와 논리에 매몰돼 갈등과 시비를 마냥 부추긴다. 국가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선거 승패가 자신들의 것 인양 우쭐대거나 비탄에 젖은 목소리를 낸다. 그렇게 사회를 더욱 갈라놓는데 몰두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치ㆍ사회적 격차(divide) 또는 단절을 완화, 치유하지 못하면 나라 장래가 어둡다는 국민적 각성이 절실하다. 정치 집단과 사회 세력의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민 개개인의 성찰과 변화가 중요하다.
고질적 지역 분할에 이념 계층 세대 갈등이 갈수록 악화하는 현실에서 모든 책임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정치세력에 돌릴 수만은 없다. 나 자신과 이웃 등 기초 공동체에서부터 왜곡된 편견과 갈등을 극복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정치적 신념과 지향이 다른 이들을 적대하는 대신 존중하는 마음과 품격 있는 언어로 대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물론 대선 승자의 포용력과 탕평 의지가 긴요하다. 갈등과 분열을 딛고 이념적 정치적 경계를 뛰어넘는 관용을 보여야 한다. 이를테면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것과 같은 국민 대통합 회의 등을 통해 지지 세력과 적대 세력을 잇는 화해와 통합의 가교를 놓아야 한다. 여기에 진정성을 담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지난 정권들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선거 패자의 아량 또한 중요하다.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패배 인정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런 패자의 너그러움이 올바른 민주주의 정치를 지탱하는 초석이다. 좌절하고 낙담한 지지 세력을 정치ㆍ사회적 타협과 평화의 길로 이끄는 용기와 책임감을 보이는 것이 진실로 '아름다운 양보'이다. 누구든 싸움은 선거로 끝내야 한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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