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결심 후 일주일간을 울었던 탓인지 한국을 대표하는 수문장은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꾹 참았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운재(39)는 후계자 정성룡(수원)과 가족 등이 참가한 은퇴식에서 끝까지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은퇴를 결심한 게 더 아쉬워질까 봐 팬들에게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
떠나는 모습도 '넘버1' 골키퍼다웠던 이운재는 17일 서울 삼성동 라마다 호텔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프로축구 선수 이운재입니다"라는 인사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별을 고하기가 쉽지 않지만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17년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은퇴를 결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는 "정해성 전남 감독이 사퇴하고 나서 '은퇴'라는 단어가 마음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시 전남이 강등 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강등 탈출을 마지막 목표로 삼았다"며 "시즌이 끝난 다음에 거취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내려놓아야 앞으로의 미래와 과거의 시간이 더 아름답게 비쳐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축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축구를 했기에 지금의 이운재가 있었다"라고 답했다. 시련의 순간으로는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 사건을 꼽았고, 가장 슬픈 순간은 "은퇴하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살과의 전쟁'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이운재는 물만 먹어도 살 찐다'는 말이 있는데 솔직히 물만 먹어서는 살이 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도 먹었다"며 "체중에 대한 문제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다. 만약 제게 모든 게 주어졌다면 그만한 노력을 안 했을 것 같다"고 웃어넘겼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살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은퇴하고 오히려 살이 빠지면 안 되는데 그게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운재는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과 2004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결정적인 승부차기를 막아내며 '거미손'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하지만 승부차기의 비법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없다. 골키퍼마다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승부차기의 비법은 수학공식처럼 나올 수 없다"며 "다만 훈련은 10~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승부차기 선방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이운재는 그라운드에 꼭 다시 설 것을 약속했다. "결정을 내린 건 아무것도 없다. 수원 삼성 코치는 모든 축구 선수들의 로망일 것이다. 잘 준비해서 팬들 앞에 다시 서겠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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