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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이야기/12월 18일] 0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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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이야기/12월 18일] 0과1

입력
2012.12.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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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 20세가 된 해는 1994년이었다. 그 해에 선거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냥 때가 되니 투표를 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당연한 일이었고, 당연하다보니 귀찮기도 했고, 귀찮다보니 건너뛴 일도 있었다.

이 당연하고도 귀찮은 권리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린 시대가 있었다는 걸 안 건 한참 후였다. 오랫동안 백인남자만이 투표를 했다. 여자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건 영국이 1928년, 프랑스가 1946년. 뭐 이런 거지같은 나라들이 다 있나. 여자는 사람도 아닌가.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미국에서 흑인이 선거에 참여하게 된 건 1965년. 뭐야. 흑인이 당나귀였나. 남의 일 흉보듯 혀를 찼다.

하지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나는 입을 삐죽거리지도 혀를 찰 수도 없게 된다. 한국에서 20세 이상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건 1987년. 그해 나는 중학생이었다. 하굣길에 가로질러야 하는 대학캠퍼스에서는 최루탄 때문에 괴로웠고, 버스를 타면 시위행렬에 오도 가도 못할 때가 많았다. 겨우 그때에, 스무 살이 되기 겨우 몇 년 전에, 그 당연하고 귀찮은 권리가 힘겹게 주어진 것이다.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야 할 때면 나는 내 존재가 숫자 1로 환원되는 것 같아 영 불편하다. 하지만 최소한 무조건 0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1이 되든 0이 되든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에서라면, 0보다는 그나마 1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시인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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