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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18일] 판사들이여, 입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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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18일] 판사들이여, 입을 열어라

입력
2012.12.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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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여검사'에 대한 최근의 2심 판결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라는 원칙이 왜 생겨났는지 생각케 한다. 판사 개개인은 독립적 사법기관으로서, 판례를 통해 법질서를 형성한다. 문제는 판결을 내린 재판관만 빼고 누가 봐도 납득이 안 되는 경우다. 이럴 때도 우리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판결에 대한 이견이나 토론을 자제해야 하는 것일까?

여검사가 내연 관계에 있던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받고 동료 검사에게 사건 관련 청탁을 한 혐의에 대해 1심은 징역 3년, 추징금 4,462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새로운 증거는 없었고, 인터넷에서 비아냥거리가 된, 판사의 새로운 해석이 있었다. 청탁을 하기 2년 7개월 전에 준 벤츠 자동차는 뇌물이 아닌 '사랑의 정표'라는 해석이다. 사랑에서 우러난 청탁 전화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그동안 정관계 고위 인사들은 왜 전화 한 통 넣었다가 옷을 벗거나 여론의 질타를 받았는지 입맛이 쓰다. 여검사가 청탁 전후 4년여간 꾸준히 받아온 까르띠에 시계, 샤넬 핸드백 등은 청탁 관계를 형성한 매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검사에 대한 봐주기 판결이라면 판사의 양심과 윤리의 문제이고, 소신을 갖고 내린 법리 해석의 결과라면 그 능력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궁금하고 우려되는 것은 판사들의 반응이다. 네티즌들처럼 경망스럽게 비판할까봐서가 아니라, 사건에 관한 공개 논평을 금한 법관윤리강령(4조 5항)의 뒤에 숨어 입을 꾹 다물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횡성 한우 판결'에 대해 비판했다가 지난달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서면경고 권고를 받았다. 상급심 비판을 문제삼는 시각이 많았지만 과연 그럴까. 우선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마저 경고의 대상이 된다면 판사는 도대체 자기 생각을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이, 다른 지역의 소를 고작 한두 달 횡성에서 키워 '횡성 한우'로 둔갑시킨 유통업자에 대한 유죄 선고를 파기환송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판결은 대부분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졌는데, 그만큼 이례적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소의 종류와 연령, 도축까지 기간, 사료의 종류 등을 종합 고려해 (횡성에서 사육한 것으로 간주할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조사"라며 "일반 국민들이 판결을 이해하지 못할 때 판사들은 '형식논리나 교조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오류가 없다면야 맹종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시대정신에 따라 법도, 판결도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고 역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잘못된 판결들을 스스로 바로잡는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니 판사들은 입을 열어야 한다. 기자들에게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판사들끼리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는 언론 활동을 해야 한다. 토론과 비판과 자성을 하지 않는 집단은 뒤처지게 마련이다. 수재들이 모인 판사 집단이라고 다를 게 없다. 지난 5년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성범죄에 대해 유독 판사들보다 엄중한 처벌을 내렸지만, 법원은 영화 '도가니'가 여론을 들끓게 만든 후에야 비로소 성범죄 형량을 높이기 시작했다. 시류에 따라 바뀌어야 하냐고 한탄하기 전에 시대가 바뀌는 것을 왜 몰랐는지 돌이켜 보라. 사회는, 인간은 자성을 통해 발전해 왔다. 판결도 그래야 한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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