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에서 '낙하산' 구설수가 많았던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내년 초 대거 바뀔 예정이어서 '공정인사' '탕평인사'를 부르짖는 새 정부 인사의 시금석이 될지 주목된다. KB금융지주 경영진이 최근 ING생명 인수를 놓고 일부 사외이사와 충돌하면서 역할의 중요성이 재확인되기도 했지만, MB정부 내내 금융권 사외이사들은 경영진과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해 '거수기'라는 비난을 자초한 게 사실이다.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공생관계'에 충실하다 보니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공정한 금융권 인사'를 다짐하고 있어, 내년에 등장할 사외이사들의 역할 강화에 관심이 모아진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에 재직 중인 사외이사 34명 중 28명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임기가 만료된다.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 9명 중 올해 선임된 황건호 이사를 제외한 8명이, 우리금융은 6명, 신한금융 9명, 하나금융 5명이 각각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 중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라 5년 임기만료(내년 3월 기준) 등의 이유로 무조건 퇴직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방민준ㆍ신희택(우리)ㆍ함상문(KB), 이구택·김경섭ㆍ유병택(하나) 등 6명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전문성 등을 고려해 새 사외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라지만, 그간 MB정부에선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으로 대표되는 나눠먹기 식 인사로 경영진과 사외이사진을 꾸리다 보니 말썽이 잦았던 게 사실이다. 최근 KB금융지주의 ING 인수를 둘러싸고 일부 사외이사가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대부분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채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MB정부에선 사외이사 역할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과는 반대로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했다"며 "저축은행 부실사태에서도 청와대,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이 대주주의 불법과 비리를 견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MB정부의 사외이사진 구성은 실패작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이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금융회사(지주, 은행, 증권, 보험)의 정기주주총회를 분석한 결과, 전체 53개사 중 47개가 안건을 100% 통과시킬 정도로 금융권 사외이사들이 기업 이익을 옹호하는 거수기나 로비스트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금융당국이 금융권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6월 국회에 제출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이 아직도 계류 중이다. 게다가 이 법안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참여를 허용, 지금처럼 경영진이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을 터줬다.
송민경 CGS 연구위원은 "금융권 사외이사는 경영진과의 친분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가 없다"며 "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와 자격 규제 등 사외이사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승모 서울서부지검 검사는 "주주 1,000명 이상의 상장회사는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해 사외이사 선임에 주주들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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