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버지소재·농촌 배경 작품 대세
외환위기 직후 특징과 유사
소설
외국소설 번역한 듯한 작품 많아
정영문·김연수 등 작가들 영향
희곡
현실·가상 경계 없앤 작품 다수
장르 간 크로스오버 따른 현상
동화·동시
편부모·조손가정 소재 상투적
의미중심 탈피못한 동시 많아
최근 문학계에 공공연히 퍼진 '문학의 위기'란 말은 기우인 것 같다. 3일까지 접수한 2013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응모자는 1,679명. 지난해 1,506명에 비해 10%이상 늘어났고, 5개 분야의 응모자, 응모편수 모두 늘었다. 시 752명(2,696편), 소설 424명(436편), 희곡 112명(112편), 동화 197명(201편), 동시 194명(680편)이 응모해 부문별로 예심 및 본심이 진행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단 하루 만에 수 백 편의 응모작을 훑어보고, 본심 후보작 또는 당선작을 가리는 여타의 신춘문예 심사와 달리 한국일보신춘문예는 각 심사위원에게 원고를 보내 일주일가량 1차 예비심사를 하게 한 후 2차 예심과 본심을 진행한다. 소설 예심 심사위원인 소설가 전성태씨는 "12월은 한국일보신춘문예 심사로 한 달을 다 보낸 것 같다"며 "투고작 한편 한편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어 심사할 때는 고생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 놓친 응모작은 없었다"고 말했다.
시 부문 응모작은 사회적인 무기력을 다룬 시가 많았다. 특히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신춘문예 특징과 유사하다. 심사위원인 한 문학평론가는 "복고적인 시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한 시도 전체 응모작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미래파'라고 불린 2000년대 중반 시단에 유행처럼 번진 전위적이고 난해한 시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한 심사위원은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려는 응모작이 상당수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 주제 측면에서 당선권에 들 만한 작품은 없었다"고 말했다. 시 부문 한 심사위원은 "탈북자가 쓴 시가 눈에 띄었다. 본심에서 논의할 수준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언어를 재빠르게 익혔다는 것은 칭찬할만 하다"고 평했다.
소설 부문은 외국소설을 번역한 듯한 작품이 많이 투고된 것이 특징이다. 정영문 김연수 이장욱처럼 서구소설의 구성, 번역투 문장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작가들이 최근 문학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생긴 현상으로 풀이된다. 소설 예심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이런 투고작에 '번역체'란 이름을 붙여줘야 할 정도로 응모자들이 번역투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소설에 국적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 하성란 씨는 "소재, 주제 면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청년실업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희곡은 유령을 소재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없어진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사위원인 한 연출가는 "문화예술의 장르 간 경계를 허문 '크로스오버'가 부각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현대 인간 인식을 구체화시킨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이 응모했지만, 작품성이 높은 것은 많지 않았다.
동화는 붕괴된 가정의 아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심사위원인 한 아동문학가는 "주인공 대개가 편부모 아니면 조손가정인 아이들이다.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응모자들이 상투적으로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완득이'로 대표되는 다문화가정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현저히 줄었다. SF, 판타지 등 장르물을 흉내 낸 작품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띄는 경향이다.
동시는 올해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평이다. 심사위원인 한 시인은 "국내에 발표되는 동시는 여전히 의미중심의 작품들이 대다수다. 동심을 계몽하려는 시도 상당히 많이 투고됐다"며 "동시는 리듬이 중요하다. 이미지도 있어야 하고, 사유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신춘문예 접수와 심사과정에서 응모자들의 다양한 면모가 눈길을 끌었다. 전국 각지의 문학청년뿐만 아니라 항공 우편으로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 전 세계 문청들이 참여했고, 청주여자교도소에서 투고한 응모자, 트레일러 운전을 하며 몇 년 째 투고한 응모자도 있었다. 유명 출판사에서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가 다른 장르에 투고했다가 1차 예비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최근 직장을 그만둔 기자가 소설을 투고하기도 했다. 심사 후 투고작의 표절을 막기 위해 '내용증명'을 보낸 이도 있었다. 5개 부문별 당선작은 2013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발표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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