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메밀묵 쑤는 중… 앞산을 채우는 차진 맛과 정
앞산의 명물Since 1979_ 앞산의 전통웰빙‘풍성메밀묵’
앞산에는 메밀묵 집이 밀집돼 있다. 이유가 있다. 등산 후에 메밀묵을 먹으면 수분과 염분 섭취에 좋기 때문이다. 앞산의 맑은 물과 찰떡 궁합을 자랑하는 메밀은 성인병 예방과 편두통 완화는 물론 풍부한 비타민과 식이섬유로 소화까지 돕는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 춘궁기 서민들의 주린 배를 알차게 돕던 이 구황식품은 이젠 보릿고개를 걸어 나와 웰빙 음식으로 변신했다. 빡빡하고 거친 맛도 좀 더 부드럽게 변했다. 30년 넘게 메밀묵을 쒀오며 자타가 공인하는 대구 대표 묵집으로 자리 잡은 풍성손메밀묵집(사장 최성욱(47))도 메밀의 변신에 일조해왔다.
30년 전통의 순수한 진 회색빛과 맛, 그 매력에 빠지면
그의 가게 앞에 ‘지금은 묵 쑤는 중’이라는 간판이 내걸리고 메밀 특유의 알싸하고 고소한 내음이 풍기면 앞산을 찾은 풍류객들의 발은 저절로 그 가게로 향한다. 최 사장은 짙은 향에 대해 묵 맛의 절반이라고 설명했다.
“메밀은 고소하다기 보단 구수하다고 하죠. 고소하다는 건 향이지만 구수한 맛은 혀와 코로 동시에 느끼는 맛입니다.”
30년 동안 고유의 풍미를 지키고 새로운 메뉴로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의 노력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껍질과 쌀을 분리하지 않은 순수 통메밀만 쓰기에 도정을 거친 메밀의 흰빛과 달리 이 곳의 메밀은 진하고 탁한 회색의 빛을 낸다. 인공 감미료나 다른 곡물도 일체 넣지 않는다. 100% 메밀은 칼국수는 버섯전에도 들어간다. 메밀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묵 말랭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쉽게 으깨지는 메밀묵을 썰어 8시간 동안 선풍기 바람에 말리면 보다 딴딴한 묵말랭이가 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해 또 다른 맛을 낸다. 최 사장은 이를 활용해 끊임없이 메밀메뉴를 개발한다. 돼지고기와 여러 야채들과 버무려 고추잡채와 비슷한 메밀묵잡채를 만들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메뉴를 고안 중이다. 엉망을 뜻하는 ‘묵사발’이라는 말과 달리 메밀묵을 만드는 과정은 엄청 까다롭다.
“묵 맛은 기다림과 정성이 반”이라던 그의 말처럼 씻은 메밀을 불리는데 대 여섯 시간이 걸리고 이를 짜내는 작업도 만만찮다. 힘의 강약조절이 중요해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한다. 이를 간수와 함께 가마솥에 붓고 팔로 휘휘 젓는데 하도 뻑뻑해 팔이 뻣뻣해질 정도다. 오랫동안 앉아서 묵을 쑤는 작업은 신체적으로 남자들이 하기 어렵다.
“아마도 전국에서 메밀묵 쑤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메밀의 맛과 매력에 매료되면 음식 연구를 게을리 할 수가 없죠. 허허!”
웰빙 묵에 더해 풍성한 정을
얹고 싶다
이곳의 메밀사랑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부터 시장에서 묵을 팔아 왔다는 그의 손윗누이(홍점선씨)는 동네 할머니에게 메밀묵 비법을 전수 받았었다. 누이에게 맛을 선뜻 전수해 준 동네 할머니는 누이의 묵을 맛본 후 자신이 묵을 쒔던 작은 가마솥을 물려줬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10년 전, 그 기술을 최 사장이 전수받았다. 할머니가 물려 준 가마솥은 이젠 아흔 살이 넘어 부엌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 솥에 담았던 맛과 정은 여전하다. 메밀에 대한 초심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묵에 담긴 맛과 정은 가게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풍성’ 이라는 이름이 묵 솥을 단박에 으깰법한 풍채 좋은 사장님의 두터운 손 때문인가 했더니 풍성한 정 때문에 얻은 이름이란다.
“원래는 그냥 ‘묵 집’이었어요. 근데 하루는 한 스님이 누님에게서 묵 한모를 시주받으셨죠. 맛나게 드셨는지 ‘풍성’이라는 이름을 적어두고 가셨어요.”
묵 한 모에 오간 정이 좋았던 누이는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썼단다. 풍성손메밀묵에 배인 조상들의 정신과 이웃에 대한 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정성으로 쑨 메밀은 고마움과 정을 고명으로 얹어 이웃은 물론 주변 노인정과 크고 작은 자선 바자회에 내놓는다.
“예전 그 할머님이 누나에게 묵 기술을 전수하고 길 가던 스님이 이름을 지어줬던 것처럼 저도 그럴 겁니다. 쑤고, 묵고, 나누고.”
장아영 엠플러스한국기자
메밀묵잡채
매밀묵골패
메밀묵채
풍성손메밀묵집 T. 053)654-8988
앞산 순환로에서 앞산 빨래터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맛둘레길에 위치. 르네상스를 지나 보이는 네번째 가게다. 작은 내리막을 아래 담쟁이 덩굴로 덮힌 건물과 노란 간판이 인상적이다.
주차공간은 가게 앞과 옆에 마련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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