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환경 파괴는 산업화 이후 본격화했고 자본주의와 현대 기술 문명이 그 주범이라고들 말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자연관은 환경 친화적이고 서양의 그것은 자연 파괴적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달리 말한다. 중국의 명청 시대에도 자연 훼손이 자주 일어났고, 그 과정에 국가 권력이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대가를 치렀음을 많은 사료를 살펴 알려준다.
중국에서 가장 큰 하천인 장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명청 시대의 환경사를 다룬 책이다. 당시 이 일대에서 벌어진 개발이 환경에 미친 영향, 그에 따른 환경의 역습과 사회적 변화를 철저하게 사료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개인 문집과 지방지 등 다양한 사료뿐 아니라 유럽 역사학계가 쌓은 환경사 연구의 주요 성과도 활용해서 썼다. 그러니 개발을 하자 말자 같은 주장 대신 당시 환경 문제의 '실체'를 자세히 고찰하는데, 거기서 오늘날에도 유용한 역사적 통찰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호북ㆍ호남ㆍ강서성, 그리고 섬서성과 사천성 일부를 포함하는 장강 중류 지역은 명청 시대에 사상 유례 없는 인구 급증으로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 환경이 변하고 그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이 보여주는 사례는 흥미롭다.
농경지가 부족하자 소수민족들이 사는 산악지대를 개발하는 '개토귀류(改土歸流)'가 일으킨 변화를 보자. 청나라 옹정제 연간(1723~1735)에 시행한 이 정책으로 환경뿐 아니라 그 지역 소수민족들의 삶도 변했다. 산지를 개간하고 광산을 개발하고 목재를 베어 내면서 숲은 파괴됐고 이권 다툼으로 민심도 사나워져 분쟁이 줄을 이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여기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인식이다. 저자는 이때 자연은 더 이상 음풍농월이나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 가치를 따져 다루는 엄연한 현실이 됐음을 지적한다.
그 시절에도 개발이냐 보존이냐가 충돌했는데, 강서성 동당산 개발을 놓고 벌어진 청대의 논쟁은 오늘날 '친환경 개발'을 내세워 자연을 섣불리 건드리는 행태와 겹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논쟁은 환경 보호보다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개발 가치가 있다, 없다가 쟁점이었다.
자연을 바꾸거나 파괴하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장강 중류의 수리시설로 중국의 역대 왕조가 공들여 관리했던 만성제를 든다. 만성제는 장강 지류인 형강을 따라 줄지어 선 67개의 작은 제방인데, 청나라 때만 해도 34회, 심할 때는 7년에 한 번 꼴로 무너져 수많은 피해를 낳았다. 물길을 가두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한 데는 장강 상류 개발에 따른 토사 유입이 크게 작용했다.
명청 시대 장강 중류에서 벌어진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쭈욱 살핀 끝에 저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행위에 침묵하지 않은 자연의 반응을 자연의 저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는 것이야말로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며 자연의 근본적 실체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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