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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근안의 뻔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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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근안의 뻔뻔함

입력
2012.12.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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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1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음식점에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70대 남자가 나타났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였다. 그가 이날 자진해서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자서전 출판기념회 때문이었다. 그는 이날 300여 쪽 분량의 자서전 을 냈다.

"30년을 지고 살았던 멍에를 내려놓고 싶다"고 말문을 연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20여분 동안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에 6ㆍ25전쟁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아 간첩 잡는 경찰이 됐다는 얘기, 각종 대공 사건을 맡았던 계기, 훈장까지 받았던 자신이 고문기술자로 불리게 된 이유 등이었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이야기할 때도,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 날선 질문 공세를 받을 때도 그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사죄하느냐" "미안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비로소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말투로 "그런 마음이 있으니 책을 낸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책에서 미안한 마음은 단 한 문장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문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사과는커녕 그는 시종일관 시대 탓만 했다. 나아가 시대와 사회가 자신을 버렸다는 분노와 적개심만 드러냈다. '국가의 안보가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니까 역적이고 주구가 됐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정치판에서 애국자라고 훈장도 받았다가 역적으로 몰려 그나마 훈장도 박탈되고 씹다 버린 껌처럼 버려졌다' 는 식이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대한 이씨의 고문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 그가 느꼈다는 억울함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표현돼 있다. '물고문을 할 때는 영화처럼 물을 많이 붓지 않는다' '전기고문에 사용된 배터리는 자동차용 배터리가 아니라 가정용 건전지다'라면서 그는 집요하게 영화가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곱디고운 사람인데… 애국인 줄 알고 고문했다'고 썼다.

이씨는 결국 이날도 변명으로 일관했을 뿐 자신의 양심 앞에 고백하지 않았다. 그가 "알몸을 내보이는 심정으로 썼다"는 자서전은 자기합리화 시도일 뿐이었다. 그는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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