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 헌정사, 사법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날짜다. 국가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된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이, 이날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신시대 국가폭력을 논할 때면 이 날은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그런데 인혁당에 앞서서 날조된 대규모 간첩단이 있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오래 전 희미해진 울릉도간첩단 사건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민중가요 '노동의 새벽'을 작곡한 최창남 목사다. 인혁당 사건에 묻혀 아무도 몰라주는 고통을 제 속으로만 삭여 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가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했다. 저자는 책을 쓴 까닭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간첩 잡는 사람들이 무서워 간첩단 사건을 외면하며 지냈다…. 침묵함으로써 박정희 유신정권에 협조하고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날들이었다. 이와 유사한 조작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모두에게 마음 기울여 용서를 구한다."
유신정권은 1974년 초 긴급조치 1, 2호를 선포한 직후 재일 간첩, 지식인, 어부 등이 울릉도를 거점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 전복을 획책했다며 47명을 검거했다.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 엉성한 중앙정보부의 기획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3명이 사형을 당했고 많은 이들이 긴 세월 옥살이를 했다. 이들의 고통은 감옥을 벗어난 뒤에도 계속됐다. 이 책은 국가폭력이 개인의 삶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외면을 강요함으로써 공동체를 파괴해 왔음을 보여준다.
책의 두 번째 꼭지는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성희 전 전북대 교수의 이야기다. 학자에서 하루아침에 거물 간첩이 된 그는 지난달 2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 사건의 재심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38년 동안 삶을 짓눌러온 멍에를 벗어나는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던 간첩이라는 이름이 두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물안개처럼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허망할 수 있는가. 이렇게 쉽게 사라져갈 것들로 인해 그리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66쪽)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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