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중간 휴식 15분을 포함해 2시간 40분의 긴 공연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나중에는 불쾌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곰곰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장난이 너무 지나쳤다.
LG아트센터가 제작해 12일 개막한 연극 '리어외전'을 본 소감이다. 이 극장이 그동안 명품 연극을 많이 선보인 데다 내놓는 작품마다 큰 화제를 부르며 호평을 받은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의 작품이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유감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확 비틀어 재구성한 이 작품은 처음부터 '오락비극'을 표방했다. 무겁고 어두운 원작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한참 웃고 나면 통절한 비감에 사무칠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날 객석의 반응은 대체로 미지근했다. 더러 웃음이 나왔지만, 유쾌 상쾌 통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이 연극은 비극을 비극으로 정색하고 다루는 것을 거부한다.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와 황당하고 뜬금 없는 장난을 계속 섞어 심각해지는 것을 막는다.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 오리지널 아니고 짝퉁이잖아"라고 대놓고 대사를 치면서 어이없고 느닷없이 보이려고 애를 쓴다. 극중 맹활약하는 코러스 배우들은 중요한 대목마다 딴죽을 걸거나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집중을 한사코 방해한다.
일부러 만들어낸 이러한 소동은, 받아들이기 힘든 거대한 비극에 저항하는 위악처럼 보인다. 예컨대 리어왕과 글로스터가 자식에게 배신당한 것을 분명히 깨닫는 순간, 코러스들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에 맞춰 치어리더 동작으로 반짝이 술을 흔들며 춤을 춘다. 비통하고 장엄한 눈물을 우스꽝스레 조롱함으로써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려는 장치일 것이다.
문제는 그 효과다. 이 대목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허튼 웃음이 노리는 짙은 페이소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어수선하게만 다가왔다. 한바탕 놀긴 하는데, 후련하지 않다. 오락을 즐기지 못한 것이 고전을 엄숙하게만 대하려는 완고함 때문만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없는 이야기로 짠 2막에서는 뛰어난 극작가, 연출가로서 고선웅의 재능이 잘 드러난다. 리어왕은 버려진 노인들을 가두는 수용소에서 시체를 묻는 노역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보고, 분연히 떨쳐 일어난다. 그 끝에는 떼죽음이 있다. 지루한 장광설 같은 1막과는 다른 긴장감이 있다. 그러나, 극 전체를 일으켜 세울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형식을 좀더 다듬고 몇몇 장면을 과감하게 쳐 내면 훨씬 나아질 것 같다.
공연은 28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