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오차 범위 내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후보 진영은 예비후보 단계에서 사퇴해버린 안철수 전 후보를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쪽에서는 '새 정치를 위한 정권교체'에 합의한 아름다운 단일화를 완성하였으므로 중도성향의 안 전 후보 지지자들 대부분을 문 후보 지지로 돌려세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보수언론 쪽에서는 이미 대세는 정해졌으며, 더 이상 '안철수 현상'의 당사자였던 '어제의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의 재등장 효과는 미미하다고 일축한다. 조선일보 11일자 김대중 칼럼 는 "이제 안철수는 마력도 매력도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안철수 현상'은 죽었다"고 단언하였다.
나는 박 후보 캠프와 보수언론이 안 전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든, 이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잡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 '안철수 현상'은 죽었다"고 단언한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8월 21일자 한겨레신문에서 김용옥 교수는 "고난에 빠진 민중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내는 처절한 소리가 '안철수 현상'"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을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초래한 민생불안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나머지, 민중들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내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바로 '안철수 현상'이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보통사람들의 아우성이 1년 전과 달라진 게 있는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자살과 범죄의 급증이 이를 잘 증명한다.
사실 '안철수 현상'의 원천은 세계화를 내세우며 무분별하게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던 김영삼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닥쳐온 외환위기, 이의 수습과정에서 구조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양극화는 지난 15년 동안 갈수록 골이 깊어졌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의 한 축이다. 경제 체제의 양극화에 더해, 국가복지의 총량이 주요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무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 체제는 '안철수 현상'의 다른 한 축이다. 양극화와 민생불안 때문에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민중의 아우성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곳이 정당정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거대 양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한 채 끊임없이 파당적 정쟁과 금권과 결탁한 기득권 추구에만 몰두해왔다. 결국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였다.
이것이 안 전 후보가 내세운 '새 정치' 주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1년 넘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지지를 보냈던 이유이다. 이번 대선의 투표용지에 안철수 이름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철수 현상'은 여전하며, '새 정치'를 향한 국민적 열망도 그대로다. '안철수 현상'의 해법으로서의 새 정치는 불공정한 시장만능주의 경제 체제를 교정하는 경제민주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인적 자본의 강화를 위한 적극적 복지, 모든 국민에게 삶의 안정성과 패자부활의 기회를 보장하고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는 보편적 복지를 유기적으로 종합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새 정치'의 제도적 틀이 복지국가 정당정치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안철수 현상'의 해결사로 등장했던 안 전 후보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양하다. 실망과 기대가 엇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철수 현상'이 그대로인 지금, 안철수 교수를 정치로 불러냈던 새 정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은 반드시 투표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의 진정한 해법은 참여하고 깨어 있는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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