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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4일] 길고양이 구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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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4일] 길고양이 구출하기

입력
2012.12.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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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일하는 헌책방 근처에 있는 청소년 대안학교 선생님이 출근하다가 길에 쓰러져있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나는 그 소식을 밤늦게야 전화로 전해 들었다. 선생님은 이 추운 날씨에 고양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일단 학교로 데려온 다음 고양이를 따뜻하게 해주고 점심시간엔 근처 동물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 했다. 다시 고양이를 병원에서 데려오긴 했지만 학교는 어수선하고 사람도 많아서 병든 고양이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좋은 공간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고양이를 당분간 우리 책방에서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고양이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병들어서 표정이 시무룩해진 작고 예쁜 고양이를 혼자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리고 다음날 고양이를 실제로 보고선 실망했다. 이제 3개월 됐다는 새끼고양이는 그동안 잘 못 먹고 다녔는지 얼굴부터 몸통, 심지어 꼬리까지 비쩍 말라있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감기에 걸렸는지 코에선 계속 물이 흘렀고 기침도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선 고양이가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목욕을 시키면 안 된다고 해서 외모는 그야말로 꼬질꼬질하고 털도 검댕이 많이 묻어 깨끗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보고나서 처음 얼마동안은 괜한 실망감 때문에 녀석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일단 맡아준다고 했으니 어쩌랴. 책방 한쪽 구석진 곳에 종이상자로 대강 집을 만들고 바닥엔 작은 전기장판을 깔아줬다. 전기장판위에 신문지를 놓고 그 위에 또 방석을 얹으니 고양이는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힘이 없어서 그런지 움직이지 않고 몸을 한껏 둥글게 말고 있다.

첫날은 밥도 거의 안 먹고 떠 놓은 물도 전혀 먹지 않아서 바늘 없는 주사기에 사료와 물을 담아서 먹여줘야 했다. 병원에서 받아 온 회충약과 감기약, 안약을 먹이는 건 무척 힘들었다. 사료와 물은 그래도 조금씩 받아먹었지만 새끼손톱 끝보다 더 작은 알약을 먹이려고 하면 입을 앙 다물고 좀처럼 벌리지 않는 것이다.

새끼고양이는 이렇게 주말을 따뜻한 헌책방에서 보내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월요일에 병원 갔을 때는 드디어 목욕을 시킬 수 있다고 해서 한 시간 동안 병원에서 깨끗하게 씻겼다. 하지만 워낙 더러웠던 탓인지 하얀 털 부분은 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더 먹을 약을 타왔고 주사도 한대 맞았다. 이날 병원비로 6만6,000원이 나왔다. 돈은 처음 고양이를 발견했던 선생님이 냈다.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일 때문에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약 나였다면 애초에 길에 있는 고양이를 데려올 용기가 났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다리를 절룩거리는 새끼고양이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보다 더 앞을 보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고양이는 병들었고 그것을 데려온 이상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는 것이니까. 주말동안 고양이에게 들어간 병원비만도 30만원 가까이 된다. 혹시 다리라도 부러진 상태였다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이 고양이는 내가 늘 사진이나 그림에서 봐왔던 귀여운 모습이 아니다. 길고양이 특유의 삼색 털이 제멋대로 나있는, 못생긴 고양이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딜 가서든지 생명이 소중하단 말을 버릇처럼 풀어놓고 특히 버려진 동물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고양이 보호단체에 달마다 후원금도 내고 있다. 그런 내가 정작 그게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내 일이 되었을 때는 도망치려고 한 것이다. 여태 내가 좋아한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가 갖고 있는 귀엽고 예쁜 이미지, 그것뿐이었다.

지금 새끼고양이는 점점 기운을 되찾고 있다. 이제는 먹이도 혼자서 먹는다. 아직 여느 고양이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거나 장난을 치지는 못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도와 준 덕에 눈빛에 생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단순하지만 큰 깨달음을 얻는다. 아무리 고매한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살면 무엇 하나.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고인 물처럼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머리만 산 것, 글만 산 것, 입만 산 것보다, 작은 것이지만 실천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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