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묘사력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심오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래서 기교가 아닌 소나무의 본질과 정직하게 대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0년간 전국을 누비며 그린 소나무와 솔밭 사생화첩이 50권을 넘고, 이를 밑그림으로 최근 3년간 그린 소나무가 무려 1,000여 점에 이르는 소나무 작가. 한국화가 문봉선(51) 홍익대 교수가 묵향이 흐르는 소나무 숲을 전시장에 들였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내년 2월 17일까지 소나무 그림 20여 점을 모은 '독야청청(獨也靑靑)-천세(千歲)를 보다'전을 연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겨울이 소나무의 멋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그는 이제야 자기만의 소나무 필법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1978년 고교생이던 문씨는 당시 서울대 미대생이던 강요배 화백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던 중 중국의 전설적인 산수화가인 형호의 '필법기(筆法記)'에 대해 들었다. 형호가 태행산(太行山) 홍곡(洪谷)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수천만 번 그린 후에야 소나무의 진(眞)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동양화에서 나무는 입문에 해당하며 그 중 소나무는 나무 중 핵심으로 불린다. 그러나 소나무를 화폭에 담아내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필법기를 마음에 새긴 그는 고향 제주도 산천단의 수령 600여 년의 곰솔을 수행하듯 수천 번이고 다시 그렸다.
그의 나이 20세,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부근의 홍송(紅松)에 반해 그린 그림이 동아미술상(1987)을 수상했지만 '겸재 정선과 이인상처럼 소나무와 대화하는 경지'에 이른 통찰력은 수십 년 소나무를 찾아 산야를 헤맨 후에야 터득했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소나무를 찾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그에게 지역의 풍토와 기후가 조형해낸 최고의 소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강원도의 소나무는 쭉쭉 뻗었고, 경상북도로 가면 곡선이 아름다운데, 그 중 으뜸은 경주 소나무죠. 전라도는 앉은뱅이 소나무가 많은데, 쓰러질 듯 넘어질 듯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의 소나무는 제 그림의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서울미술관 옆,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 석파정(石坡亭)에 자리한 수령 600년의 천세송(千歲松)'(서울시 지정 보호수 60호)도 그가 그렸다. 묵향과 솔향이 나는 천세송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02)395-01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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