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산업은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용효과가 매우 큰 미래 성장 동력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항공산업 육성에 나선 것은 1980년 초음속 전투기인 F-5E/F 면허생산에 착수하면서부터이다. 제공호라고 명명된 이 항공기는 82년 9월 최초 시험비행에 성공하였고 86년까지 계획된 물량을 차질 없이 생산해냈다. 그러나 생산이 종료된 후 다음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렵게 마련한 생산시설과 기술력은 사장되고 말았다.
터보프롭엔진을 장착한 기본훈련기 KT-1은 88년 개발에 착수하여 91년 첫 비행에 성공하고 2000년부터 공군에 납품되어 기본훈련기와 전술통제기로 운용되고 있다. KT-1은 인도네시아와 터키로의 수출에 이어 최근 페루와도 수출계약을 체결하였다. 항공 선진국들의 견제 속에서도 수출에 성공한 것은 성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았고 가격 경쟁력도 높았기 때문이다.
제트 훈련기 T-50은 92년부터 95년까지 탐색개발에 이어 97년 체계 개발에 착수하였다. 2001년 10월 시제기가 출고되고 2002년 첫 시험비행에 이어 2003년 초음속비행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우리 항공산업이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시대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2005년 8월부터는 T-50 항공기가 공군에 납품되기 시작하여 고등훈련기로 운용되고 있고 후속으로 전투훈련이 가능하도록 각종 무장발사 기능을 갖춘 TA-50 항공기도 출고 되었다. T-50 항공기로 구성된 공군의 블랙이글스 특수비행팀이 2012년 영국 국제에어쇼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면서 이 항공기의 기동성과 안전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KT-1에 이어 T-50도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수출하게 되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T-50 항공기가 현존 훈련기 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항공기라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잠재적 수출시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항공기 개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다. T-50 체계개발과정에서는 약 2조원을 투입하여 약 4조6,000억 원의 파급효과를 거두었고 양산과정에서도 약 7조원을 투입하여 약 16조 원의 파급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이 항공기개발 사업들이 성공하고 설계, 생산, 시험평가 등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항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한국형전투기 개발사업은 지지부진하다. 한정된 인력과 설비로 유지되고 있는 우리 항공 산업은 연속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선행기종이 양산단계에 들어가면 바로 후속기종의 개발이 시작되어야 항공기 설계를 비롯한 항공우주분야 기술 인력들이 안정된 가운데 항공기개발과 생산에 전념할 수 있고 관련 산업들이 체계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의 약 절반은 30년 이상 된 노후기종으로 2018년경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한국형 전투기개발은 시급한 과제이고, 따라서 공군은 2002년경에 이미 한국형 전투기 소요를 제기하였다. 이처럼 전투기개발의 필요성이 분명한데도 지금까지 사업타당성과 경제성 검토에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2011년에야 551억 원의 예산이 확보되어 금년 말까지 탐색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나 탐색개발 결과를 토대로 체계 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요구한 2013년도 예산 299억 원은 정부에서 전액 삭감되고 또 다른 경제성 검토를 위한 45억 원만 반영되어 있다. 항공산업 발전이나 공군의 전력 확보에 대한 분명한 정책은 없고 단지 개발소요 비용을 국방예산의 틀에 묶어 놓고 그 예산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 늦추어 놓고 보자는 논리인 것 같다. 이와 같은 책임 회피성 정책은 우리 군의 전력유지와 항공 산업 발전에 엄청난 폐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현 정부에서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이 문제를 파헤쳐서 항공우주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고 안정된 군 전력 확보가 가능하도록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할 것이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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