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마포 레인보우 주민연대라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 살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구청에서 관리하는 현수막 게시대에 현수막을 걸기로 하였다. 현수막에 써진 글귀는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 소수자입니다"와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이다.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내용도 아니다. 그냥 당신들 옆에 우리도 살고 있다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포구청에서는 이 현수막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활동가가 전해준 말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주민들이 혐오스러워 할 수 있다고 했다고도 한다. 첫 번째 현수막에 그려진 그림에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수막을 찾아봤다. 사진도 아니고, 그림이며, 몸 전체도 아니고 상반신이고, 키스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서로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만약 저 그림이 혐오스럽거나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방송에 나오는 광고는 다 내려야할 판이다. 두 번째 현수막에서 문제가 된 것은 '살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변명을 하다 '반말조'여서 문제가 된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하면서 활동가는 '지나가는 것'은 되는데 '살고 있다'는 것은 안 된다는 건 뭐냐고 어이없어 했다.
마포구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일이 문제가 된 다음 마포구 게시판에는 현수막을 허용하지 말라는 글이 도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일은 작지만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정치를 말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보장하라고 한다든지, 등록금을 반으로 내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현수막은 그 누구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는 것이 없다. 다만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를 알리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의 주장은 "입 닥치고", "찌그러져" 살라는 말이다.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얼굴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 그것이 마포구의 요구인 셈이다.
얼굴을 부정당한 인간, 그 존재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얼굴이 없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머리'뿐이다. 얼굴은 없고 머리만 있는 존재를 우리는 짐승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짐승의 머리를 인간의 머리와 달리 '대가리'라고 낮추어 부른다. 왜냐하면 내 존재의 희노애락과 경험을 타인에게 드러내며 타인에게 윤리를 요청하는 것은 레비나스의 말을 빌리면 머리가 아니라 얼굴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지고 타인이 내 얼굴을 봄으로써 우리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지나가는 자'는 얼굴을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같이 '사는 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며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나가는 자'는 되지만 '사는 자'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순간, 얼굴을 외면한 사람은 완전히 비윤리적인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혐오스러운 것만큼이나 자신의 반윤리적인 모습을 대면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윤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반윤리성을 폭로하는 얼굴을 철저히 지워버리는 '반윤리적 행동'이라는 역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 현수막은 올해 내가 본 정치적 구호 중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을 통해 저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나게 했다. 얼굴을, 존재를 포기하라는 요구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뻔뻔하게' 존재를 요구하는 '혐오스러운' 변태 집단 성소수자의 얼굴이 아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고, 없게 만들기 위해 있는 존재를 지우고 파괴하며, 인간의 얼굴을 짐승의 머리로 만들려는,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인 '대가리'다.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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