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를 보러 가는 걸음은 썩 내키질 않았다. 귓볼을 베는 듯한 찬바람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다. 80이 넘은 노부부가 맞는 죽음이란 영화의 주제 때문이다. 아무리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 해도 늙음과 죽음은 아직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떠올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아파트 침대 위, 썩어가는 할머니의 시신으로 시작된다. 그의 머리맡엔 마른 꽃잎이 수를 놓고 있다. 병과 죽음과 맞닥뜨린 노년의 삶은 단조롭고 절제된 화면에 가두어진다. 카메라는 웬만하면 정지해있고 카메라의 시선도 일반의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범한 시선으로 평범하게 관조한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는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와 안느(에마뉘엘 리바).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은 위기를 맞는다. 조르주가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안느를 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는 초반에 보인 음악회 공연장 객석을 제외하곤 줄곧 조르주의 집 실내를 벗어나지 않는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안느는 갑자기 접시를 치운 뒤 앨범을 가져다 달란다. 어릴 적 사진을 넘겨보던 아내가 말한다. "인생 참 길다"고.
대화 능력을 상실한 엄마를 본 딸(이사벨 위페르)네 식구가 다른 병원에 가보라, 의사를 바꿔보라 타박할 때,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당부를 지키려는 조르주는 "너만큼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단호히 막아선다.
억지로 물을 먹이려다 아내가 자신의 얼굴에 물을 뱉어내자 조르주의 인내심은 폭발, 순간 안느에게 손찌검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남편은 "미안하다"며 무너져 내린다.
영화엔 그 흔해빠진 은유도 상징도 없다. 배경음악도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알렉상드로 타로가 안느의 애제자 역할로 나와 연주한 것과, 초반의 음악회, 안나의 연주 회상 신 등 몇 번만 나오고 만다. 늙음과 죽음을 그저 지긋이 바라보는, 그 어떤 장식도 없는 관조의 시선이 노년의 주름진 얼굴에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끌어내고, 상실과 고독을 길어 올린다.
2009년 '하얀 리본'에 이어 두 작품 연속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 역시 거장의 시선은 달랐다. 이 영화는 최근 타임지가 뽑은 '2012년 최고의 영화'에 선정됐으며 유럽 최고의 영화상인 '유러피언 필름 어워즈'에서 작품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19일 개봉.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