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ㆍ저성장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어느새 '소리 없이' 눈 앞에 닥친 바젤Ⅲ 규제가 향후 은행권 영업관행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강화된 건전성 규제를 핑계 삼아 은행들이 서민과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바젤Ⅲ 부작용을 막을 정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11일 금융감독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내년부터 경영건전성 기준으로 일제히 바젤Ⅲ를 도입할 예정이다. 1997년 의무화된 바젤Ⅰ을 시작으로 2008년 바젤Ⅱ에 이은 바젤 시리즈의 3차 완결판인 셈이다. 바젤Ⅲ 중 자본 관련 규제는 내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기준을 높여 2019년에 최종 완성 예정이고, 유동성 관련 규제는 각각 2015년(단기 유동성)과 2018년(중ㆍ장기 유동성)에 적용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준비 부족으로 도입을 미룬 미국 유럽과 달리, 국내 은행은 지금도 최종 기준을 충족시킬 만큼 건전성이 뛰어나다"며 "바젤Ⅲ는 향후 금융사의 리스크관리와 경영건전성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경제적 파급력이 큰 은행권에서 바젤Ⅲ가 향후 수년간 단계적으로 적용되면 기존 예금ㆍ대출 관행은 물론, 은행의 자산운용, 국가경제 전반에서 작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낸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의 영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들은 우선 자본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자본금을 더 늘리거나 위험자산(대출)을 줄여야 한다. 한은은 이를 위해 16조~34조원의 증자나 3~5년에 걸친 순이익 내부유보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또 자산운용 측면에서도 안전한 국채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영업도 크게 변한다. 자본금에 쓰일 이익을 늘리기 위해 예대 금리차를 확대할 가능성이 큰데, 이때 예금금리를 낮추기보다는 대출금리를 높이는 쪽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중소기업 대출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이런 대출금리 인상과 대출규모 축소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쳐 장기적으로 자본규제 비율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예대 금리차는 0.25%포인트 커지고 경제성장률은 0.23% 감소할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위기에 쓸 유동성 자금을 더 늘리라는 규제도 변수다. 은행들이 바젤Ⅲ의 '예금 이탈률' 가중치가 낮은 예금에 집중하게 되면 급여통장이나 주거래기업 예금에만 공을 들일 수 있다. 또 거액예금을 선호하게 돼 서민 대신 프라이빗뱅킹(PB) 위주 영업을 우선시하며 서민ㆍ중기 대출은 꺼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시중은행들도 이 같은 우려에 동감하는 분위기다. A은행 리스크부서 관계자는 "아무래도 장기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은 꺼리게 될 것"이라며 "유동성규제 적용 시기가 2015년이지만 내년부터 미리 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B은행 자금 담당자는 "결국 은행 리스크와 함께 수익도 줄이라는 게 바젤Ⅲ"라며 "호황기에 시행해야 그나마 충격이 덜할 텐데 앞으로 시중에 돈이 더욱 안 돌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은 류상철 팀장은 "은행의 중기대출 축소, 비은행권으로의 거래 쏠림 등 부작용에 대비한 종합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바젤Ⅲ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젤Ⅱ의 한계를 지적하며 은행의 자본규제를 한층 강화한 새 국제기준. 8% 이상이던 기존 BIS비율 기준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추가로 보통주ㆍ기본자본 비율 기준도 강화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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