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공사의 ‘어서 말을 해’라는 공익광고는 청소년들의 언어생활 실태를 인상적으로 전해준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청소년들에게 은어나 비속어를 빼고 말하라는 주문이 떨어진 순간 사방이 조용해지고, 더러 말문을 연 청소년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이때 울리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는 카피의 여운이 선명하다. 카피처럼 바른말에 충분히 뜻을 담지 못하는 것은 비속어에 젖은 청소년들만이 아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두 차례의 대통령 후보 TV토론만 봐도 그랬다.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등 세 후보의 ‘말다툼’ 내용에 대한 평가는 지지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임한 사람이라면 말의 힘에 대한 공부와 노력으로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체득해야 한다는 점에선 셋 다 모자랐다. 박 후보는 분명한 듯하면서도 둔해서 답답했고, 문 후보는 차분했지만 의사 전달이 불분명했다. 이 후보의 말은 날만 잔뜩 서 있었다.
■박 후보는 쫓기는 처지에서 말조심을 하고, 문 후보는 억센 사투리를 누그러뜨리려 애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양대 후보 모두 문장으로 완결된 말보다 중간에 툭 끊어지거나 끝맺음이 흐릿한 말을 구사한 탓이 크다. 각각의 득표전략에 따른, 의도된 두루뭉실함이거나 애매모호함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내려 가다가 잠시 애드리브로 빠지면 곧바로 말이 헝클어지는 정치인도 많다. 그런 말 다듬기가 정치기사 작성의 절반일 정도다.
■미국이나 일본 의회의 정치토론에서 주술관계나 나열ㆍ병치 등이 정확한 데 놀라 혹시 우리말이 논리적으로 취약한가 하는 의심까지 했다. 그러나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면 깔끔한 기사가 되는 사람도 있으니 헛된 의심이다. 대신 바른 글쓰기는 물론이고 바른 말하기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어문교육의 부실이 새삼스럽다. 지도자가 말 그대로 대중을 이끄는 존재라면, 국민을 올바른 언어생활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정치인은 어문학습에 더욱 공을 들여 마땅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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