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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12일] '짜장면'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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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12일] '짜장면'들의 세계

입력
2012.12.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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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나의 시에 '모자르다'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맞춤법 상 틀린 표현이니 '모자라다'로 바꾸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모자르다'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건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뜨는 숱한 문장들에 '모자르다'라는 말이 들어 있지만 전부 잘못 쓴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선뜻 수긍이 되지 않는다. 어감 상 나에게 '모자라다'는 구체적인 길이나 폭이 부족한 것으로 느껴진다. 반면 '모자르다'는 정확하게 재거나 셀 수 없는 무언가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피가 모자라다'보다는 '피가 모자르다'가 더 어울리지 않나?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게 아니라 표현 영역이 서로 다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메일을 보낸 편집자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까 약간 고민을 했다. 출판사 쪽에서 보면 나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으니 어법 상 틀린 것으로 규정된 단어를 그냥 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규칙이 없다면 표기방식은 한없이 혼란스러워질 테니까. 하지만 결국 '모자르다'는 단어를 그대로 써달라는 답장을 보냈다. '모자라다'로는, 그야말로 모자랐달까.

규칙이 너무 엄하고 옹졸하면 사람도 그렇듯 말도 답답해진다. 나는 바른말 고운말보다 유연하게 틀리면서 자유로워지는 말들에 더 애정이 간다. '자장면'의 세계를 흔들어대는 '짜장면'들이 좋다. 덕후와 폐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들어내는 암호 같은 말의 신세계에 마음이 끌린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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