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제1회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응모에서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았으나 자유당정권에 대한 풍자와 독설을 담았다는 이유로 최종심에서 탈락한 단편 '자유풍속'이 58년만에 햇빛을 본다. 이 소설을 투고한 사람은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 민음사출판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맹호(78) 회장. 박 회장은 11일 발간하는 자서전 (민음사 발행)을 통해 그동안 묻혀있던 사연을 밝히고 소설을 발표한다.
문학출판계에서는 박 회장이 학창시절'문청(문학 청년)'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사한 스승은 없지만, 대학시절 서울대 불문과 동기동창인 이어령을 비롯해 신동욱 정인영 박재삼 신경림 등 문인들과 교류하며 소설을 썼다. 서울대 문리대 문학회가 1956년 처음 발간한 의 창간 멤버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1953년 말 탈고한 소설 '자유풍속'을 이듬해 겨울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편집인은 "박 회장이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이던 소설가 한운사 선생에게서 '당신이 사실상 당선이었는데 막판에 취소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신춘문예 소설 심사는 문학평론가 백철, 소설가 최정희씨가 맡았다. 1955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당선작과 함께 실린 심사평에서 백씨는 "이번 응모소설에 대한 인상은 그 수준이 일반적으로 괄목하리만치 높아진 사실"이라며 "그중에서도 박맹호의 '자유풍속'은 문단에서 그 예가 없은 풍자소설의 일형(一型)을 창조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백씨는 이어 박 회장을 두고 "현실에 대한 파악력, 날카로운 기지, 상당한 지적 교양 등 확실히 앞날의 좋은 작가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당연 나는 이 작품을 일석(一席)으로 하고 오상원의 '유예'(猶豫)를 이석으로 했는데 결국 현실풍자인 때문에 발표관계도 있어서 낙선되고 '유예'가 입선되었다'고 썼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중인 1952년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이승만 정부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한 후 직선제 개헌을 추진했던 부산정치파동을 풍자한 내용이다. 이후 한국일보는 작품 외적인 기준으로 낙선 처리된 박 회장에 "미안한 마음 때문에 두 번의 소설 연재 기회를 주어 같은 해 5월 중편'五月(오월)의 아버지'를 두 차례로 나눠 신문 주말판에 발표했다"고 장 편집인이 전했다. 연재 당시 박 회장은 정식 등단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때문에 필명인'飛龍沼(비룡소)'라는 이름을 썼다. 비룡소는 현재 민음사출판그룹의 어린이책 전문 브랜드 이름이 됐다.
박 회장은 이 사건으로 당시 꽤나 유명세를 치렀다. '자유풍속'의 주인공인 '맥파로(脈波路)'가 박 회장의 별명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박회장은 이 일 등으로 소설가의 꿈을 접고 출판에 뛰어들었다. 신춘문예 당선 실패가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은 물론 한국 출판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 된 것이다. 장 편집인은 "박 회장은 종종 직원들에게 자신이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소설가의 꿈을 접은 것이라고 말씀한다"며 "스스로를 1급의 재능 있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신춘문예 탈락 사연과 문청 시절 이야기는 300여 쪽 자서전 가운데 50여 쪽에 걸쳐 상세히 실려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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