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갈수록 불안하다. 당국의 수차례 개입에도 불구하고 도통 반등의 기미가 없다. 오히려 슬금슬금 내려가면서 20일 사이에 1차(1,085원), 2차(1,080원) 방어선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원ㆍ달러 환율 1,080원을 마지노선이라 여겼던 수출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10일 환율은 0.7원 하락으로 출발해 오전 중 전해진 정부의 2차 개입 시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락폭을 넓혀 결국 3원 가까이 빠지며 1,080원선을 무너뜨렸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선물환포지션 한도 2단계 조치로 적용방식을 직전 1개월 평균에서 매(每)영업일 잔액 기준으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예 매일매일 투기목적 거래를 들여다보고 압박하겠다는 얘기다. 지난달 27일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1단계)에 이은 2단계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칼을 빼든 1단계 조치 이후에도 환율 움직임은 신통치 않았다. 발표 당일 1,084.1원이던 환율은 다음날인 28일 2원 정도 오른 걸 제외하곤 다시 하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직접 개입에도 살짝 눈치만 봤을 뿐인 환율 하락세가 이번 구두 엄포에 꿈쩍 할 리 없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2단계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매일매일 압박은 될지언정 현물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현재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만 썼을 뿐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3종 세트' 중 2개의 무기가 더 남아있다. 하지만 시장이 이미 예상하고 있는 전략이라 약발이 제대로 먹힐지 회의적이다. 단기 외화자금의 유ㆍ출입을 억제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 도입이 강력한 무기로 거론되지만 당국은 아직 부담스런 눈치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날 "토빈세를 제외하고 기존 제도 안에서 대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계단식 하락을 전망하고 있다. 즉 당국이 나서면 한동안 수준을 유지하다 약발이 떨어지면 바로 다음 단계로 하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수출기업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쥐고 있는 달러를 연말에 쏟아낸다면 당국이 막더라도 하락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기업들은 환율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은 아직 견딜만한 수준이지만 중소기업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날 무역보험공사가 수출기업 38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 원ㆍ달러 환율은 평균 1,102원인 반면 대기업은 1,059원이었다. 이날 환율(1,079.0원)을 감안하면 대기업은 아직 20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다. 업종별로는 플라스틱제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이 1,003원으로 환율 하락에 대한 대응력이 높았고, 가전은 1,127원으로 취약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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