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연구실에 들렀다. 연구실은 그날따라 문이 잠겨 있었다. 가방을 뒤졌지만 열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경비실에도 사람이 없었다. 조교로 일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자 오후에나 들어올 것 같다고 했다. 건물 입구에 서서 조교든 경비아저씨든 먼저 오는 사람을 맥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날은 추웠고, 점점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저만치서 조교가 손을 흔들었을 때 나는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문을 열어준 후 나갔다가 곧 따뜻한 커피를 들고 와 내 손에 건넸다. 우리는 잠시 창밖의 헐벗은 나무들과 굵어진 눈송이들을 보며 커피로 몸을 녹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누나. 제가 교회를 처음 나가던 무렵의 일인데요, 한 대학생이 작은 예배모임에서 간증을 해요. 다음날이 무슨 자격증 시험이라 과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대요. 그러다 늦은 밥을 먹고 들어왔는데 그 사이 누가 문을 걸고 가버린 거예요. 망했구나 싶어 울컥 했는데 문득 주머니에서 카드가 만져지더래요. 그리고 카드를 걸림쇠 사이로 잘 집어넣으면 문을 열 수 있다는 게 생각났다더라고요. 그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웃기죠? 저도 웃겼어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저는 여전히 그런 간지러운 감사에는 적응이 안 돼요. 하지만 이렇게 문은 열렸고,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있고… 이건 은혜가 아니라도 좋은 일 아니겠어요?"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