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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11일] 국민의 헌신을 끌어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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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2월 11일] 국민의 헌신을 끌어낼 대통령

입력
2012.12.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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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위기의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한다."

제프리 삭스(58)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최근작 (The Price of Civilization)의 첫 문장이다. 1983년 29세에 하버드대 사상 최연소 정교수로 임명되면서 유명해진 천재 경제학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미국의 처지에 대한 당혹감으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1970년대 자신이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배울 당시 미국은 "기업과 정부가 '혼합경제'의 일부로서 보완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라고 평가하면서, 이런 균형 속에 미국경제가 순항하고 있었기에 "향후 경제문제는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 더 첨예할 것이기 때문에 외국 경제에 에너지를 쏟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세계경제 재앙의 근원이 됐으며, 자신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러시아 동유럽 저개발국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며 쌓아온 지식들을 미국에 적용하게 됐다고 씁쓸해 한다.

그는 미국의 위기를 "엘리트층 내부에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해…힘 있는 자와 부자들이 사려 깊고 동정적 태도를 버리고 사회가 시장과 법률, 선거만으로 이뤄지게 됐다"고 요약한다.

그의 책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에 대한 판단과 향후 5년간 우리 경제의 과제도 삭스 교수의 문제 의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747'같은 허황된 고도 성장 약속이나 감세 등 신자유주의적 공약이 난무하던 5년 전과는 180도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복지관련 예산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내놓은 '나라살림 가계부(공약 수입ㆍ지출표)'에 따르면 5년간 박 후보의 복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은 100조원 가량이다.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는 공약집 '사람이 먼저인 대한민국, 국민과의 약속 119'에서 복지 공약에 최대 192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가 늘어나는 만큼 국민은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 삭스 교수는 이런 단순 명확한 상식을 외면한 채 "감세를 하면 수요가 증가돼 국가재정이 더 튼튼해질 것"이란 신자유주의자의 의심스런 주장에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면서 미국 경제위기가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불행히도 두 유력 후보가 내놓은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모두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문 후보는 부자 감세 철회와 대기업 실효세율 상향 조정, 소득세 과표 조정 등 일부 증세를 약속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증세는 없으며 정부 지출 삭감으로 60%, 세입 증대로 40%를 충당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정부의 비능률을 제거하고 탈세 추적 강화 등 세입을 높일 여지는 충분히 있고 또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박 후보와 유사한 재정정책을 펼친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실패를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연방정부 규모는 레이건 재임 8년간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정부를 악마 취급하던 레이건이라 할지라도 이미 존재하는 정부기관을 없애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감세로 줄어든 세수만큼 교육과 사회복지,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삭스 교수는 이것이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쇠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라면 급증하는 노인인구와 청년실업, 취약해진 중산층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 분야 지출을 늘리고 교육과 과학 기술 예산도 늘어날 수 밖에 없음을 국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며 특히 부유층이 솔선수범해야 다른 국민들도 따를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가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삭스 교수의 미국 위기 해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현실과 유리된 채 시들어가는 공동체적 책임에 대한 시민적 미덕을 공공정책에 다시 연계시킬 방안을 찾는 것"이다. 책 제목 는 바로 세금 특히 부자 증세인 것이다.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공동체적 책임을 국민에게 요구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정영오 경제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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