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성장 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로 수출 환경이 악화하는 가운데 내수 및 고용과 직결되는 설비ㆍ건설투자도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초 올해 3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를 점쳤던 정부의 경기 전망도 비관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달 말 발표하는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다는 방침이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중소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10월 설비투자는 작년 같은 달보다 0.7% 축소됐고, 국내 건설수주도 21.7%나 줄었다. 미국의 재정절벽과 유로존 위기 등 불확실성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3분기 제조업 생산증가율은 0.4%로, 2009년 2분기(-5.8%)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을 각 2.2%와 2.9%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8월 발표한 2.6%, 3.3%보다 각 0.4%포인트 하향된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유로존 위기가 다시 부각하고 미국의 재정절벽, 중국의 성장 둔화 등 대외 리스크가 불거지면 내년 우리 성장률이 2.3%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3분기 저점론'을 고수해왔던 정부의 입장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기획재정부가 9월 예산안 발표 때 내놓았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4.0%. 하지만 이는 국내외 연구기관 전망치인 2%대 후반에서 3%대 중반과는 괴리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제시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도 당초 3.4%에서 각각 3.0%, 3.2%로 낮췄다. 노무라(2.5%), UBS(2.9%), 메릴린치(2.8%), 도이체방크(2.6%), BNP파리바(2.9%) 등 투자은행(IB)은 일제히 2%대를 예상했다. 향후 수출과 내수 전망이 밝지 않다는게 성장률 전망치 하락의 주요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의 새 지도부가 '균형무역' 달성을 목표로 설정, 중국으로의 수출여건이 더 나빠진다고 예상했다. 중국의 수출 둔화는 곧바로 한국의 대 중국 수출둔화로 이어진다. 대중 수출의 3분의 2 가량이 가공무역이나 보세무역 등 재수출용이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 0.1%)이 '제로'에 근접한 것도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전망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있어 대내외 경제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낮추겠지만 하향 폭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 부진에다 가계부채 문제가 소비를 제약하면서 설비투자까지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비스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제도 마련으로 내수시장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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