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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10일] 노벨박물관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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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10일] 노벨박물관의 의자

입력
2012.12.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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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상 시상식이 7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림원에서 열렸다. 일본은 만능유도줄기(iPS)세포를 개발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대 교수가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행사에 참석했다. 이미 자연과학분야에서 16명, 문학상 등을 통틀어 19명의 수상자를 배출해서인지 일본 언론은 신야 교수의 수상 의미 등 거창한 내용보다는 신야 교수가 시상식에 누구와 함께 했는지, 노벨박물관이 판매하는 기념 초콜릿을 몇 개 구입했는지 등 시상식 관련 일화를 가십성으로 소개하는 등 행사 자체를 즐기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중 인상 깊은 내용을 하나 소개한다.

노벨상 시상식 행사는 수상자들이 한림원 1층 노벨박물관의 카페 의자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2001년 설립된 노벨박물관이 소장 자료가 미비하다는 지적에 수상자들에게 카페의 의자 아랫부분에 사인을 부탁한 것이 서명 행사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120여명의 수상자가 의자에 사인을 했고 이제는 노벨박물관의 상징이 돼 서명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의 사인이 적힌 의자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별도의 높은 단 위에서 유리 케이스에 싸여 특별 전시되는 의자가 하나 있다. 이 의자를 보는 순간 모두가 세계 평화에 큰 기여를 했거나 위대한 문호 혹은 인류 과학 업적에 커다란 공헌을 한 거물 수상자의 사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인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의 친필 사인이 적혀있다. 다나카는 대학 졸업 후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해 줄곧 연구원으로 재직한 평범한 회사원으로, 그가 수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일본 열도 조차 처음 듣는 의외 인물의 이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세계는 그의 노벨상 수상을 두고 기초과학에 대한 아낌 없는 투자의 결실이자 장인 정신이 빚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노벨박물관 측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되기 전날까지 그는 무명의 직장인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꿈을 이룬 유명인으로 변했다"며 "그에게 특별한 대접을 하는 것은 그가 노벨상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수상자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이 노벨상에 강한 이유가 기초과학이 튼튼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요즘 이를 실감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2년생 아들을 집 근처 학원이 운영하는 과학실험교실에 보내려고 2월 수업 신청을 했다. 별 어려움 없이 곧 바로 수업에 참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 과신이었다. 학원 측은 수강생이 가득 차 대기 명단에 올려놓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잊고 지냈는데 10월에야 빈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8개월을 기다리게 만든 일본 학부모들의 기초 과학에 대한 열기를 새삼 확인했다.

실습 내용도 생활과 밀접해 재미있다. 한번은 원심분리이론을 활용, 원유에서 치즈를 만드는 수업을 하더니 얼마 전에는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실험을 한 뒤 완성품을 가져와 먹어보기도 했다. 학생들이 열기구를 스스로 만들어 날릴 수 있도록 하는 수업도 있었다. 수업 내용에 익숙해지다 보면 학생들은 과학에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 이것이 과학 강국 일본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류의 공통 관심사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에서 노벨상의 수상자가 나오면 그 나라는 국격이 올라간다. 한국 어린이들이 노벨상 이야기가 나올 때 더 이상 일본 앞에서 작아지지 않도록, 떳떳하게 어깨를 펼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기초 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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