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유로사태와 미국의 재정절벽, 그리고 일본의 퇴조는 이제 세계가 회복대신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반증한다. 해외시장에 의존한 우리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채 사회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전례 없는 충격이 가세하면서 채무처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번 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부채를 늘려 주택을 마련한 중산층과 서민계층이 집값 하락의 부담을 송두리째 안고 있다는 점이다. 취약한 계층일수록 채무변제 부담이 과중해지는 점을 단지 이해 당사자들간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분명 계층간 형평성 상실이 주요이슈로 부각된 전면적인 채무위기 상황이다.
채무위기를 방치하면 경제전체가 장기침체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특히 과잉부채로 초래된 위기에서 중산층의 퇴조와 분배구조의 악화는 불가피하다. 금융자산 보유비중이 높은 고소득층과는 달리 중서민계층은 빚을 내서 거의 유일한 자산인 주택을 마련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집값 하락의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다. 특히 채무상환부담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가해지는 자산가격 하락의 충격은 상환부담을 이중으로 늘리면서 중서민층의 부를 앗아간다. LTV초과대출금액이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월에 이미 17%에 육박한데다 원리금 상환비율이 경상소득의 60%를 넘는 잠재적 위험가구가 57만 가구이며 40~50대 자영업자에 집중되어 있다. 실로 채무과잉의 문제는 자산건전성 저하를 통해 은행권뿐 아니라 경제전반의 안정기조를 흔들 수 있다.
통상적으로 채무위기의 초기에는 채권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구제책이 우선시된다. 이후에 위기로 초래된 자산가격 하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채무자들의 상환부담이 이슈화된다. 그러나 정작 채무부담 경감 노력은 구호차원에서 되풀이 되기 쉽다. 실제로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한 시장반응은 냉담하다. 소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거대회사들의 구제에는 신속하면서 중서민 계층을 위한 대책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들 간의 이해갈등으로 모멘텀이 실종되기 쉽다. 조직화되지 못해 보호받지 못하는 가계부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위기직후 취해진 하우스푸어 구제책인 HAMP(Home Affordability Modification Program)는 광범위한 집단이익 보호에 대한 유인 약화로 실패하였다. 반면 2008년 AIG에 대한 대규모 구제책은 신속하게 취해졌다. 분명히 납세자와 유권자를 위해 운영되어야 할 금융시스템은 거듭해서 대마불사와 도덕적 해이를 강화시키면서 처리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처리방식은 결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와 고용을 저해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수반한다. 따라서 채무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채권자위주의 문제처리 방식에서 벗어난 보다 균형 잡힌 중재자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 당국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채무위기에서 중산층과 서민경제의 이익보호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통적인 채권자 이익보호 우선의 대응방식으로는 중서민층의 몰락과 장기침체라는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기 쉽다. 특히 최근의 위기는 자산가격의 하락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인식과 대응을 필요로 한다. 포괄적인 도산제도 외에도 부동산 거래활성화를 위한 전담기구를 확충하고 민관펀드의 시장참여를 유도하면서 자산보유 유무나 구성을 고려한 채무경감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채무위기의 장기화 가능성을 감안하여 거시정책수단에 의존한 해법을 구사하기에 앞서 책임소재파악과 원인규명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미 선진경제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이 비기축통화국간의 환율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간에도 문제를 키워서 무차별적으로 외부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금융시스템도 과거의 이해관계자 중심형 폐쇄적 관행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최종적으로 부담을 지는 주체들의 입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될 수 있어야 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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