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2ㆍ고려대)가 한껏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정상 등극은 물론 2014년 소치 올림픽의 금메달 가능성까지 높였다.
김연아는 8일(한국시간)부터 독일 도르트문트 아이스스포르트젠트룸에서 열린 NRW트로피 대회를 통해 은반 위에 섰다. 강렬한 캐릭터를 음악 속에 녹여 표현했고, 풍부한 감정을 담은 몸짓으로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교과서'라고 불리는 점프도 완벽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트리플 플립 등 빠르고 높은 도약은 명불허전이었다. 김연아는 이로써 20개월 만에 출전한 복귀전에서 퍼펙트 연기를 펼치면서 여왕의 모습으로 귀환했다.
역대 최고 예술점수의 의미
김연아는 8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7.42점과 예술점수(PCS) 34.85점을 받아 72.27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사상 최고 점수였고, 예술점수만 놓고 보면 여자 피겨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풍부한 감정 연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김연아는 배경음악'뱀파이어의 키스'가 흐르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이어 두 손을 모았다가 펼치고 때론 밀어내기도 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다. 사실 20개월의 공백 탓에 실전 적응력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었지만, 김연아는 이 같은 우려를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의 가장 부족한 부분으로 표정 연기를 꼽곤 한다. 점프와 스핀 등 기술적인 부분은 세계 정상급에 근접했지만 "예술 점수에서 많이 딸린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김연아는 늘 예외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무대를 즐기고 몸짓과 손짓, 표정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피겨 여왕'만의 장점이었다. 이날 역시 환상적인 감정 표현으로 개인 최고 기록인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33.80을 뛰어 넘는 예술점수를 얻었다.
올림픽 2연패 '파란불'
김연아의 최종 목표는 2014 소치올림픽이다. 지난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하면서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김연아는 당시 "후배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치에서는 금메달을 따겠다는 생각 보다는 경기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사상 세 번째로 올림픽 2연패의 영광을 맛 볼 가능성이 커졌다. 여전히 김연아의 경기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소치 올림픽까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올림픽에서 2연패 이상의 성적을 거둔 선수는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3연패)와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뿐이다.
해외 언론 찬사… 일본은 '긴장'
김연아가 복귀전을 완벽하게 마치자 외신들은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챔피언인 김연아가 경쟁 무대로 돌아왔다"며 "긴 공백을 깨고 흠이 없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품격 있는 연기였다. 대부분의 피겨 팬들은 김연아만 바라봤다"며 "경기장에는 '김연아'를 연호하는 소리만 들렸다"고 전했다.
반면 일본 언론은 긴장하고 있다. 스포츠 호치는 "아사다 마오의 강력한 라이벌이 돌아왔다. 김연아가 거의 실수 없는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아사다 마오의 올 시즌 쇼트프로그램 최고 기록인 67.95점을 웃도는 72.27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김연아가 1년8개월 만의 복귀에도 3회전 연속 점프를 포함한 모든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전했다.
파스텔 블루에 붉은 보석 '반짝'
'뱀파이어…' 의상도 빛나의상도 완벽했다.
여왕의 복귀전으로 전세계의 눈이 쏠린 가운데 김연아는 이날 파스텔 블루톤에 크리스탈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의상을 입고 나왔다.
'뱀파이어의 키스'는 공포 영화 특유의 음산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아련한 멜로디와 격정적인 절정이 이어지는 음악이다. 김연아는 음악에 맞춰 뱀파이어로 상징되는 관능적인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피해자의 역할을 재해석했다.
의상과 연기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김연아는 앞면을 보석으로 장식해 화려한 느낌을 줬다. 쇄골에서 어깨, 등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강렬한 붉은색 보석으로 이어 붙여 포인트를 줬다. 뱀파이어의 희생자가 되는 순진한 여성의 목 주위로 흘러내리는 유혹의 선혈을 상징하는 듯했다.
김연아는 "뱀파이어에게 당하는 여성의 캐릭터인 만큼 검은색이나 붉은색 등 강한 색상보다는 여성스러운 드레스에 붉은색으로 포인트?줬다. (유혹을) 부정하면서도 빨려 들어가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 동안 김연아의 의상은 화려한 연기 못지 않게 많은 화제를 낳았다. 밴쿠버올림픽 때는 쇼트프로그램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에 맞춰 검정색 드레스를 채택해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프리스케이팅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에서는 파란색 드레스로 우아함을 강조했다. 이 드레스는 '피규어(사람이나 동물을 본뜬 모형 장난감)'로 제작되기도 했다.
경쟁자들의'김연아 의상 베끼기' 논란도 있었다. 중국의 장잉은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김연아가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입었던 것과 거의 같은 의상을 입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검정색이던 배경색만 은빛으로 바뀌었을 뿐 이상봉 디자이너가 만든 세부적인 장식은 그대로였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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