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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10일] 우리의 임금은 정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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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10일] 우리의 임금은 정의롭지 않다

입력
2012.12.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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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냉장고가 먹통이 됐다. 수리기사가 보더니 컴프레서가 고장 났단다. 부품 교체비가 48만원이라는 말에 큰 맘 먹고 260만원짜리 새 냉장고를 구입했다. 13년간 사용했으니 용도 폐기할 때도 됐다 싶었다. 그런데 단독주택 3층에 살다 보니 부엌에 냉장고를 설치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문짝을 떼내고도 몸체 무게만 190㎏에 달했다.

장정 서너 명이 매달려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주문한 냉장고를 싣고 온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체구가 왜소한 앳된 얼굴들이었다. 고장 난 냉장고를 수거하고 새 냉장고를 장착하느라 4명의 젊은이가 무려 2시간30분 동안 땀을 펄펄 흘렸다. 그들이 돌아간 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가전제품 대리점에 소속된 설치기사의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됐다. 노동의 값어치가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월급 100만원도 안 되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원에 비하면 그나마 보수가 나은 편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저임금 근로자(전체 근로자 중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근로자)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작년 말 미국의 경제학자 존 슈미트(John Schmit)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전체 근로자 중 저임금 근로자(월급 120만원 이하) 비중은 25.7%나 된다. 열심히 일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근로빈곤층이 4명 중 1명 꼴이라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다른 한쪽에선 연말 인사 시즌을 맞아 수억~수십 억원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들의 승진 잔치가 요란하다. 초임 임원인 상무의 연봉은 2억원을 훌쩍 넘고 전무와 부사장 등 직급이 오를 때마다 급여가 배 이상 오른다고 한다. 주요 대기업 임원의 평균 급여가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의 39배, 비정규직 근로자의 64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별 보며 출근하고 밥 먹듯 야근하며 충성을 다한 대가일 것이다. 실적이 나빠지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구조조정 1순위인데,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항변도 들린다. 임원의 생산성이 평사원보다 높지 않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하지만 대기업 임원의 생산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평균 연봉이 평사원의 14배(재벌닷컴 조사)나 되는 현실을 정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생산성을 합리적 잣대로 측정하긴 쉽지 않거니와, 기업 실적이 좋아진 데는 경영진은 물론 직원들과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땀과 희생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환율과 금리정책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정부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임금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존 슈미트는 사회적 합의나 제도가 임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올해 연봉은 대기업 초임 상무보다 적은 1억8,941만원이다. 대통령의 생산성이 대기업 임원보다 낮기 때문에 이런 연봉이 책정된 건 아닐 것이다.

민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 종업원이나 청소원은 다른 일자리에 비해 노동력 공급이 많은 편이지만, 핀란드(8.5%) 노르웨이(8.0%) 벨기에(4.0%) 등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한국의 3분의 1~6분의 1에 불과하다.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 금지,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등 사회적 제도를 통해 청소원이나 콜센터 상담원에게도 중위소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배경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은 임원 급여를 결정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 총수가 지배하는 이사회가 개인별 임원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인데다 전체 총액 외에는 공개도 하지 않는다. 미국식 성과주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은 임원 몸값을 정하는데 총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임금은 삶의 질을 결정할뿐더러 소비와 성장의 원천이기도 하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따르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정당한 수준의 보상이냐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나친 성과주의가 저성장과 세계 최고의 임금 불평등을 낳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임금 책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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