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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별 따고난 후 주말 사라지고 건강은 엉망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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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별 따고난 후 주말 사라지고 건강은 엉망됐죠"

입력
2012.12.0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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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저에요?" 김 상무는 담배 한대를 꺼내며 물었다. 대기업 임원이 수 천 명인데 왜 자신을 인터뷰하느냐는 반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상위 100대 기업에 근무하는 임원은 6,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남성에 나이 52세, 공학 전공, 경영학 석사, 임원 승진 3년 차, 말하자면 대한민국 임원 가운데 가장 평균에 가까웠다.

김 상무의 이야기는 25년 전부터 시작됐다. 처음부터 임원이 꿈은 아니었다. 20~30대 그의 머리 속에는 술 연애 스포츠가 거의 전부였다. 당시에도 임원이 부럽긴 했지만 일 밖에 모르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가정이 생기고, 차장 부장으로 승진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더욱이 직급별로 승진을 할 때마다 입사 동기 중 선두자리를 차지했다. 욕심이 생겼다.

회사에서 실력이란 결국 언어와 인맥이라고 봤다. 출근길에는 영어회화 공부, 퇴근 후에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때마침 경기가 좋아 회사와 팀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해마다 사상 최대 승진 잔치가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결정적으로 운도 따랐다. 과거에 부장으로 모시던 임원이 5년 만에 직속 부사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그의 고교 선배이기도 했다. "학연이 별거 아닌 듯하지만 적어도 배신은 안 할 것이란 점에서 '가산점'이 있더군요." 2009년 말 그는 나이 쉰을 앞두고 직장인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에 올랐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연봉은 2배 가까이 올랐고, 승용차와 골프회원권, 법인카드가 주어졌다. 건강검진 수준도 달라졌고 심지어 와이프 검진권도 줬다. 하지만 이런 혜택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원 될 때까지는 그래도 주말은 있었는데 임원이 되고 나니 아예 주말도 없더군요."

출근이 당겨지고 퇴근이 늦어진 건 기본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혜택을 받는 만큼 회사의 수익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같이 승진한 한 임원은 분기 실적이 시원치 않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원의 약자가 '임시직원'이라는 말을 실감했죠."

실제로 한 컨설팅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원 가운데 1~2년짜리 단명 임원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임원이 됐다는 것은 더 이상 오를 곳이 마땅치 않다는, 회사 입장에선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구조조정 0순위'나 다름없다. 당일 통보를 받고 짐을 싸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다른 부서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퍼트리거나 인사철이 되면 일손을 놓고 로비에만 신경 쓰는 임원도 있다. 김 상무는 임원들 간의 강한 위계질서도 은근한 스트레스라고 지적했다. 서로의 처지를 아는 탓에 부하 직원들보다 더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요즘은 덜하지만 아래 임원에게 술을 강권하고 따로 불러 군기를 잡는 경우도 있었단다. "사장 이하 임원들이 사우나를 가면 아래 임원부터 먼저 씻고 나와 줄을 서 대기를 하다 마지막에 사장이 나오는, 군대 버금가는 문화죠."

김 상무는 임원을 하면서 두 가지를 잃었다. 하나는 가정이다. 군대 간 아들이 세 번째 휴가를 나올 때야 비로소 얼굴을 봤다. 딸아이 고등학교 졸업식은 꽃다발 배송으로 대신했다. 경남에 있는 처가에 간지는 5년이 넘었다.

다른 하나는 건강이다. 50대의 나이에 과로와 만성적인 스트레스, 운동 부족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다. 어느새 그의 책상의 세 번째 서랍은 건강식품과 의약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악관절 통증이 심해졌다. 의사 말로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자서 생긴 병'이라고 했다. 주변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임원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하고 있다고 자위한다. 8년째 부장을 하다 최근 중견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동기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술 상무'로 유명했던 친구였다.

그는 요즘에는 새벽에 집을 나선다. 회사에서 '위기경영'을 선언한 탓도 있지만, 연말 인사철이란 점도 신경이 쓰인다. 특히 사장 앞에서 중요 프레젠테이션도 예정되어 있다. 전무승진을 기대하고 있지만, 일단은 퇴출되지 않는 게 목표다.

퇴직 후에 대한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대책은 없다. 명색이 내로라하는 대기업 임원 출신인데, 눈치도 보인다. 선배들은 임원이 끝나면 자회사나 협력회사로도 많이 나갔지만, 요즘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주변에 보면 일 중독에 빠져 살다 공허감에 시달리는 '퇴직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상무는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전력투구하며 서바이벌 해야죠"라고 말하며 씁쓸히 웃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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