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은 갖추고 있어야 했다. 우선 남성이어야 하고, 나이가 40대 후반은 되어야 하며, 4년제 대학졸업 그 중에서도 가급적 명문대 출신이어야 했다. 모든 임원들이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는 '40대 이상 대졸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성과 학력, 나이가 모두 '파괴'되고 있다.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고졸 임원, 여성 임원, 30대 임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작년 말 승진자를 기준으로 삼성의 1,800명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은 총 42명. 2.5% 수준이다. 오너 일가를 빼면 최고 직급은 부사장이다. 삼성전자 심수옥 부사장과 제일기획 최인아 부사장 등 2명의 부사장이 포진해있다. 삼성관계자는 "임원 승진 대상자인 부장급에선 여성이 200여명이나 되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임원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여성인재론'에 따라 입사 전형에서 남자들을 위한 군필자 가산점도 빼버린 상태다.
LG그룹에선 전체 280여명의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이 16명이다. SK그룹도 700여명의 임원 가운데 10여명의 여성 임원이 포진해 있다.
4대 그룹은 아니지만 코오롱그룹에서 올해 창사 이래 처음 여성CEO가 탄생했다. 최근 정기인사에서 코오롱워터에너지 CEO가 된 이수영 부사장은 올해 44세로, 한번에 2단계씩 올라가는 초고속승진 끝에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고졸 임원들은 학력 타파의 대표적 상징으로 꼽힌다.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에만 고졸 출신 임원이 194명이다. LG에선 올해 처음으로 고졸출신 사장이 탄생했다. LG전자 사장으로 승진한 조성진 생활가전사업본부장은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LG전자(옛 금성사)에 입사, 평생을 세탁기 개발에만 전념해온 끝에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게 됐다.
물론 엄밀히 말해 고졸 임원들의 최종학력이 고졸인 것은 아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입사했다는 뜻일 뿐, 대부분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왔기 때문에 실제론 대부분 대졸 학력자들이다. 재계 관계자는 "승진 경쟁에서 올라가려면 개발직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관리직에서 고졸로만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그런 점에서 진정한 학력 타파가 되려면 대학을 나오지 않은 진정한 고졸 임원이 많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이의 벽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40대 초ㆍ중반, 심지어 30대 임원들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특히 공채출신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고, 경력채용이 늘어나면서, 임원 연령도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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