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때가 된 듯하다. 매사 때가 있는 법인데 한국 검찰도 이제 일에 때를 찾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는 '3대 성역'이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혹자는 그것을 '재벌, 언론, 검찰'이라고 했고, 혹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종교, 대학, 검찰'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남은 마지막 성역이라고 했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한국사회 3대 성역을 꼽든 검찰은 거기 포함됐다. 검찰이 대단한 조직이라는 현실의 반증이다.
재벌이 성역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한 그것은 당분간은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운위되는 현실에서, 또 최근 몇몇 재벌의 사례에서 보듯 오너가 검찰과 법원에 의해 단죄를 받는 상황에서 그 성역도 상당부분 위축된다. 언론이 성역이다? 성역인 척하려는, 성역으로 남아있고 싶어 발버둥치는 언론사가 있을지 모르지만 기자가 언론 현실을 보기에 이건 철지난 소리다. 종교도 이제는 성역에서 벗어나 세속으로 내려오실 때가 됐다. 대학도 더 이상 상아탑이라는 미명이 내홍이나 외풍을 막아주는 무풍지대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이렇게 따지면 검찰이야말로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일의 성역인 셈이다. 설사 재벌 언론 종교 대학이 아직 성역임을 강변하더라도, 그들도 검찰 앞에 서면 한없이 왜소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왜 검찰이 성역이 됐는지를 따져보면 사실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기소독점주의나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그 성스러움의 기본이 됐다. 인신을 구속하고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 1,800여명의 엘리트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관계 하에서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 움직인다는 어마어마한 조직원리다. 한국의 역대 정권이 이런 막강한 검찰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 리 만무했다. 정치검찰이니 검찰의 정권 눈치보기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과거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내걸고 평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만들어 설전을 벌이다 집중 공격을 받고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말하던 장면은, 성역이 된 한국 검찰의 모습을 역으로 보여준 하나의 삽화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울 듯했던 검찰의 탈성역화, 일반적인 표현으로 검찰개혁이란 것이 이제는 검찰조직 스스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사회의 초미의 과제가 됐다. 그 계기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서울고검의 부장검사급 검사가 무려 1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평소 검찰과 앙앙불락하던 경찰의 사건 추적으로 불거지고,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습 중이던 나이 서른살의 검사가 마흔세살의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 안에서 사실상 위력으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 잇달아 터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스폰서 검사니 그랜저 검사니 벤츠 검사니 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그저 검사 한두 명의 일탈이려니 하고 꿈쩍도 않던 검찰은 이들 사건 앞에서 입을 열 수 없게 됐다. 이 서울고검 검사는 수사 결과 10여년 동안 임지를 옮겨다닐 때마다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추문 검사 사건이 불거진 후에는 다른 검사 10명과 14명의 검찰 직원이 피해 여성의 사진을, 아마 호기심에서, 불법 열람한 사실이 드러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라는 성역 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앞으로는 칼을 들고 뒤로는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목도하게 됐다.
티핑 포인트라는 개념이 아마 지금 한국 검찰에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상황의 균형이 깨지고 단번에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는 변수가 생긴 순간,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다. 그 순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물이 끓듯 안에서 끓어오르다 마침내 임계점에 달해 폭발하는 순간이다. 한국 검찰은 성역의 내부에서 곪아오다 마침내 '돈 검사'와 '성 검사' 두 명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는 무엇보다 변화에 저항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체질을 바꿔 나가려는, 성역을 깨고 나오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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